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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한 의도로 나쁜 결과 낳는 규제 강화
연구진 이상호 원장  보도기관 매일경제 날짜 2018-11-22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제도적 기반은 공정경제라고 본다. 하지만 처벌과 규제가 공정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이처럼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는 규제에 관해서는 상충되는 경우도 있다.

연관되는 전체 법·제도의 틀을 도외시하고, 정치논리나 이해관계 집단의 요구만 좇다 보면 공정경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와 달리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하도급 벌점 제도를 보자. 이 제도는 원도급자가 하도급법을 위반했을 때 행정처분과 함께 그 수위에 따라 벌점을 부과해 공공공사 입찰 참가를 제한하거나, 영업정지를 요청하는 등 중복 처벌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하도급법 준수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법률에서 정한 활동을 한 원도급자가 받은 벌점을 경감시켜 주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제도가 한편에서는 벌점과 처벌을 주고, 다른 한편에서는 벌점을 경감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도급 벌점 제도는 교통신호 위반자에 대한 제도와 유사하다. 교통신호를 위반한 운전자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추가로 벌점을 부과한다. 똑같이 하도급법을 위반한 원도급자에게 과징금과 벌점을 부과하고, 3년 동안 부과된 벌점이 일정 점수를 초과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중대한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여 공공공사 입찰 참가를 제한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교통신호 위반으로 과징금과 벌점을 받은 운전자도 특별 교육을 이수한 자는 벌점을 경감하여 운전면허 정지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면허가 정지되면 생업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해 과중한 처벌을 하는 것도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원도급자가 하도급법에서 정한 내용을 자율적으로 이행하면 공정위는 원도급자의 벌점에서 일정한 점수를 빼준다. 예를 들어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 및 특별 교육 참여 등이 이뤄지면 벌점이 경감된다. 원도급자가 공정하게 하도급을 운영하도록 하고, 경미한 위반 행위로 인해 공공공사 입찰 참가 제한이나 영업정지와 같은 심각한 제재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또한 누적 벌점이 일정 기준을 초과해도 곧바로 공공공사 입찰 참여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가 관계기관에 요청하고, 관계기관이 법질서 위반 정도와 피해, 기업의 책임성 등을 참작해 최종 처분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공공공사 입찰 참가 제한이 원도급자의 기업 활동에 심각한 파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만약 입찰 참가 제한으로 공사 수주가 중단되면 원도급사의 피해뿐만 아니라 하도급사의 임직원도 일감 부족에 따라 일자리가 축소될 수 있다. 게다가 불복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거액의 행정소송 비용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해진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하도급 벌점 경감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이 제도가 원도급자의 처벌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며, 누적 벌점을 받은 원도급자의 공공공사 입찰 참가 제한이나 영업정지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제도 개선 의지를 피력하면서 벌점 제도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하도급 벌점 제도가 벌점 부과와 경감 제도를 함께 운용하고 있는 취지가 무엇인지부터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인 하도급자를 보호하자는 데 대해서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하도급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다. 물론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는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10월 18일 공정위는 단 한 차례의 고발 조치만으로도 대폭 벌점을 부과해 즉각 공공공사 입찰 참가를 제한할 수 있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이미 시행했다. 이 같은 강력한 조치에 더해 또다시 벌점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공정하고 적절한지는 전체 법·제도의 틀 속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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