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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지역경제 목조르는 미분양 사태

보도일자 2007-11-22

보도기관 조선일보

IMF 구제 금융을 받은 지 10주년이라고들 한다. 10년이 경과하면서 대부분 산업분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찬 도약을 다짐하고 있는 듯하지만 주택업계만은 다르다. 마치 다시 ‘도로 IMF’가 된 듯, 10만 가구에 가까운 미분양 물량으로 전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간 ‘불패’ 지역으로 일컬어졌던 서울 강남지역에서조차 실제 청약자가 한 명도 없는 단지가 나오는가 하면, 주요 광역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의 계약률은 10% 미만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지방에서 아파트 사업을 하고 있는 A업체는 신규 분양 아파트의 계약률이 5%에도 못 미치는 데다가 그나마 분양된 아파트도 잔금납부까지 지연되고 있어 부도 직전의 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줄타기하고 있다. B업체의 경우는 초기계약금이 500만~1000만원 정도로 미미한 데다 분양 후 시세가 계속 내리면서 계약을 해지해달라는 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C업체의 경우에는 주택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대금지불조건을 제시하고 순금에 해외여행 등의 경품까지 제공하는 등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연말에 분양물량이 쏟아져 미분양 물량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미분양의 원인이 업체의 잘못된 수요예측이나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의 주택수요 감소는 단순히 경기적 요인이 아닌 정책적 요인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방시장의 경우 주택 건설 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미분양 적체로 지방업체들이 도산할 경우 이는 고스란히 지역경제의 부담이 된다. 지금의 미분양 사태가 지속된다면 선(先)분양 대금에 건설업계 대출금의 상환 불이행이 증가할 것이며,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를 보면 그 여파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의 미분양 사태가 악화되면 그 피해는 단순히 사업자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태가 더욱 악화되기 이전에 어떠한 대책을 펼 수 있을까. 정부는 지난 9월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매입하는 미분양 해소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의 미분양 아파트가 시장에서 충분히 해소될 수 있도록, 경기적 요인보다 정책적 효과로 인해 과도하게 위축된 주택수요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장기 고정금리대출로 유도하면서 대출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또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서 강화된 분양권 전매기간도 다소 완화, 주택교체를 원활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원천적으로 1가구 2주택 보유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요구된다. 주택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2주택자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노후를 대비해 주택 하나를 더 보유하고자 하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2주택 보유자가 투기적 목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일률적인 잣대로 모든 지역과 대상을 포괄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을 놓고 많은 비판이 있다. 그러나 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제도화하는 등 ‘투기억제를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들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 추세로 미분양 주택이 쌓여간다면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도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 과도한 부동산 투기억제가 경제를 망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때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실책을 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