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여유로운 삶을 소망하며
보도일자 2008-04-21
보도기관 아시아 경제
몇년 전 내가 살고 있던 과천의 중앙공원에서 7080 가수들의 공연이 열렸다. 야외공연이어서 그런지 음향도 불안정했고 조명 또한 고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선율과 의미들을 음미하는 순간 나는 어느새 1970년대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젊음과 청춘을 맘껏 과시하던 1970년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기타와 생맥주가 크게 유행했고, 너나없이 장발에 청바지로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 시절에는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 못지않게 외국 팝송들도 유행했고, 나는 시중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LP 레코드판들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중고품시장을 종종 찾곤 했다.
청계8가 황학동 시장에는 전국 팔도 방방곡곡의 중고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즐비했다. 좌판이나 가게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각종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야말로 새 것만 빼고는 없는 것이 없는 노천박물관이었다. 모든 것이 어려웠던 때의 산물이지만 낭만도 있었다. 희귀본 LP 레코드판을 찾아다니던 즐거움과 함께 그 시절에는 또 다른 추억이 어우러져 있다. 당시 복개된 청계천의 한 켠에는 중고 서적을 취급하는 책방들이 많았다.
싼 값도 값이려니와 오래된 책들 속에서 고문헌이라도 한권 건져 올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더미들을 뒤지곤 했다. 어렵게 구한 LP레코드판을 겨드랑이에 꼭 끼고 헌 책들을 뒤지던 오래된 기억이 너무나 새롭다.
마치 시골장터에서 보물을 찾는 것과도 같은 즐거움을 주던 황학동 중고품시장. 지금은 삼일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상가들도 함께 사라지고 청계8가 뒷골목 일부만 남아 주말에만 열리는 벼룩시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들러본 그 골목에는 그래도 골동품 소품에서부터 옛날 영상음향기기, LP레코드판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천원짜리 부침개에서부터 돼지껍데기볶음, 막걸리와 같은 싸고 감칠맛나는 먹거리가 가득했으며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살아가는 냄새로 넘실거렸다.
청계천 끝자락 황학동에서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5.8㎞의 맑은 물길 속에는 물고기가 숨을 쉬고 새가 난다. 그리고 꽃이 핀다. 이렇게 청계천은 완전히 복원됐다.
잿빛 아스팔트 밑으로 사라진지 47년 만이다. 새로운 서울이 시작됐다. 자연이 다시 살아나고 하늘 높은 빌딩들이 늘어선 ''친환경의 첨단거리''로 거듭났다. 뉴욕이나 도쿄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 도심을 대표하는 거리다.
사실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시작할 당시만 해도 모두들 하천 복원의 가능성에 대해 염려와 의구심의 눈길을 보냈다. 우선 청계고가도로가 매일 실어나르는 엄청난 교통량, 공사기간 동안 제대로 장사하기 힘든 6만여개의 주변 점포와 20만명의 상인들.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불가능해 보이던 청계천 복원 공사를 특유의 돌관력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힘들고 추운 서민들의 세상살이가 그의 강력한 경제살리기로 복원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두둑해진 주머니로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아지기를….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곧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다. 한 10년쯤 후에는 그때는 그랬었지, 그렇게 어려웠었지 하며 오늘의 어려운 시절을 즐겁게 추억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내가 젊음과 청춘을 맘껏 과시하던 1970년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기타와 생맥주가 크게 유행했고, 너나없이 장발에 청바지로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 시절에는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 못지않게 외국 팝송들도 유행했고, 나는 시중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LP 레코드판들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중고품시장을 종종 찾곤 했다.
청계8가 황학동 시장에는 전국 팔도 방방곡곡의 중고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즐비했다. 좌판이나 가게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각종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야말로 새 것만 빼고는 없는 것이 없는 노천박물관이었다. 모든 것이 어려웠던 때의 산물이지만 낭만도 있었다. 희귀본 LP 레코드판을 찾아다니던 즐거움과 함께 그 시절에는 또 다른 추억이 어우러져 있다. 당시 복개된 청계천의 한 켠에는 중고 서적을 취급하는 책방들이 많았다.
싼 값도 값이려니와 오래된 책들 속에서 고문헌이라도 한권 건져 올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더미들을 뒤지곤 했다. 어렵게 구한 LP레코드판을 겨드랑이에 꼭 끼고 헌 책들을 뒤지던 오래된 기억이 너무나 새롭다.
마치 시골장터에서 보물을 찾는 것과도 같은 즐거움을 주던 황학동 중고품시장. 지금은 삼일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상가들도 함께 사라지고 청계8가 뒷골목 일부만 남아 주말에만 열리는 벼룩시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들러본 그 골목에는 그래도 골동품 소품에서부터 옛날 영상음향기기, LP레코드판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천원짜리 부침개에서부터 돼지껍데기볶음, 막걸리와 같은 싸고 감칠맛나는 먹거리가 가득했으며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살아가는 냄새로 넘실거렸다.
청계천 끝자락 황학동에서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5.8㎞의 맑은 물길 속에는 물고기가 숨을 쉬고 새가 난다. 그리고 꽃이 핀다. 이렇게 청계천은 완전히 복원됐다.
잿빛 아스팔트 밑으로 사라진지 47년 만이다. 새로운 서울이 시작됐다. 자연이 다시 살아나고 하늘 높은 빌딩들이 늘어선 ''친환경의 첨단거리''로 거듭났다. 뉴욕이나 도쿄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 도심을 대표하는 거리다.
사실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시작할 당시만 해도 모두들 하천 복원의 가능성에 대해 염려와 의구심의 눈길을 보냈다. 우선 청계고가도로가 매일 실어나르는 엄청난 교통량, 공사기간 동안 제대로 장사하기 힘든 6만여개의 주변 점포와 20만명의 상인들.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불가능해 보이던 청계천 복원 공사를 특유의 돌관력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힘들고 추운 서민들의 세상살이가 그의 강력한 경제살리기로 복원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두둑해진 주머니로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아지기를….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곧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다. 한 10년쯤 후에는 그때는 그랬었지, 그렇게 어려웠었지 하며 오늘의 어려운 시절을 즐겁게 추억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