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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토건국가’ 그 오해와 진실

보도일자 2011-09-05

보도기관 건설경제

일부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건설 분야에 과도하게 투자한다고 비판한다. 며칠 전에도 대표적 정치인 한 분이 우리나라는 이제 토건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 년 전부터는 ‘토건국가’ ‘삽질경제’ ‘건설오적’ 등 이상한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일반 국민이 이런 말을 자주 듣다 보면 건설 분야가 엄청난 특혜라도 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토건국가’의 실상을 살펴보는 것도 올바른 사실 확인을 위해 좋을 것 같다.

 지난 8월 말 통계청은 2010년 건설업조사 잠정결과를 발표했다. 통계청의 건설업 통계조사는 매년 모든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하는 건설업의 실상을 가장 정확히 파악하는 조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기성액은 184조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1.6% 감소했다. 건설 공사액이 전년도에 비해 줄어든 것은 IMF 외환위기로 얼어붙었던 1999년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통계청 발표는 명목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실제로 공사규모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려면 디플레이터를 고려해야 한다. 2005년 실질가격을 기준으로 한 지난해의 건설기성액은 144조5000억원이다. 전년에 비해 5.3% 감소한 규모다.

 전체 건설투자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한창이니 토목투자는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토목투자 역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실질 토목공사액은 44조7000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무려 11.8%나 감소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으로 일부에서는 공사가 증가했을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다른 여러 곳에서 공사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지난해 공공발주 공사의 실질규모는 10.6%나 감소했다.

 정부는 앞으로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을 더욱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의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재정지출은 2014년까지 연평균 4.8% 증가한 반면, SOC예산은 5년간 2조원을 줄여 연평균 1.7%씩 축소되고 있다. 12개 정부지출 부문 중에서 유일하게 감소되는 항목이 바로 SOC예산이다.

 이처럼 건설산업이 처한 현실은 일부에서 시사하는 특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정확한 사실 인식은 올바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최소한 방향성에 대한 판단은 맞아야 한다. 그런데 건설투자 실태에 대해 정확히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건설산업에 대한 오해는 단순히 가치중립적 사실인식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토건국가’ ‘삽질경제’라는 표현은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매우 강하다. 전체 건설산업을 공공의 적인 양 교묘히 조롱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나의 산업을 전체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건설 분야에는 도덕적으로 하자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제도와 불합리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개점 휴업 상태의 지방 공항을 건설산업의 문제로 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탄생한 타협의 산물이지 공사에 참여한 건설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책사업의 결정과정에 참여한 주체들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함이다. 국가의 기본적 책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방, 법치에 의한 정의의 실현, 그리고 일상적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물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국가 역할의 핵심이다. 날마다 초만원 지하철에서 자존심 상해야 하고,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 것을 숙명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인프라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는 것을 당연시해서도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유명 정치인의 애향심을 증명하기 위한 기념비적 시설물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다수의 국민이 꼭 필요로 하는 쾌적하고 안전한 인프라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서울의 초만원 출근 전철 속에서 사람들이 쏠리는 바람에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단다. 기본적인 책무를 완수하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상황에서 ‘토건국가’ 운운하는 것은 다분히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건설산업은 지금 아사지경에 처해 있다. 적격공사의 평균 입찰경쟁률이 수백대 일을 넘는다 하니 수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해 1년간 1억원 이상의 공사를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한 업체가 무려 29%에 이르렀다는 발표도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내색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많은 건설산업 종사자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경솔한 표현은 삼가는 것이 도리다. 특정 사업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고 해서 건설산업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양식 있는 자세가 아니다. 우리 사회발전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는 분들의 넓은 도량과 따뜻한 격려가 더욱 그리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