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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진입장벽 완화 VS 여과장치 강화

보도일자 2012-05-21

보도기관 건설경제

건설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3개의 관문이 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자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게 첫 번째 관문이다. 두 번째 관문은 사업자 자격을 가진 자가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전입찰참가자격(PQ)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마지막 관문은 사업자격과 입찰참가자격을 갖춘 입찰자간의 경쟁을 통과해야 공사 참여 자격을 갖게 된다. 이는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선수등록을 해야 하고 등록된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정 기록을 내야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가대표선수 중에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자격 역시 IOC가 인정하는 국제공인기록 이상을 보유해야 가능하다. 금메달은 올림픽 출전권을 가진 선수끼리 경쟁에서 결정된다. 건설공사 참가 절차와 별반 다름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요구 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변별력 여부에 있다.

국내 건설산업의 변별력을 짚어보자. 첫 번째 관문은 사업자 자격규정이다. 국내에서는 자격 기준을 장벽(barrier)으로 보고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다. 면허제는 시장개방(1995년 WTO 가입)을 이유로 등록제로 변경했다. 원하는 누구나 최소요건만 갖추면 건설업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장 규제 완화 차원에서 등록 요건을 낮춘 것이 이름뿐인 회사(페이퍼컴퍼니)을 양산하게 만들었다. 건설산업에서 50년 이상을 영업을 한 회사와 5년 미만의 신생업체와의 차별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등록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 기능이 약해진 결과다.

두 번째 관문인 사전입찰참가자격심의제(PQ)는 근본 취지가 여과장치, 즉 스크린(screen)장치로 일정 역량을 갖춘 기업만이 입찰에 참가 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육상 경기 중 허들경기와 성격이 같다. 장벽은 아니지만 일정 요건을 통과해야만 골인지점(여기서는 입찰참가자격 획득)까지 갈 수 있다. 장벽은 넘을 수 없는 벽이지만 허들은 넘을 수 있는 장애다. 그런데 이 허들이 유명무실하다. 사업자격을 가진 업체라면 95% 이상이 통과하니 여과장치로 보기보다 통과의례(?)로 보는 것 같다. 미국의 입찰참가자격통과업체 수가 5개 이하나 일본의 10개 이하를 당연 시 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만약 국내에서 5개사 이하로 통과시키면 당장 담합 가능성을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설 것임이 분명하다. 현재도 변별력 강화 수단으로 PQ강화론이 거론되지만 시장의 반발이 거세다.

세 번째 관문은 경쟁이다. 기술경쟁과 가격경쟁이 있다. 문제는 기술경쟁은 주관적 판단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오직 가격경쟁으로 흐른다. 주관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지만 최소 30개사가 넘는 입찰참가업체를 심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객관성이라는 이유로 가격만을 평가하게 된다. 가격도 단가를 평가하면 기술력으로 인정받고 총액으로 평가하면 투명한 가격평가로 평가받는 게 현재 우리 건설산업의 모습이다. 공종별 단가로 기술력을 평가한다고 하지만 본질은 입찰자간 평균 단가, 가격평가가 본질이다. 기술보다 추측성 단가 제안이 본질인 것이다.

국내 건설시장은 2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물량은 줄고 가격은 하락하여 채산성을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 건설시장은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최저가낙찰제 폐지 혹은 선택제를 주장한다. 예정가격보다 훨씬 낮은 입찰가격을 제시하면서 최저가낙찰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 있다. 이 모순 뒤에는 입찰참가업체수가 10개 이상을 넘어 갈 경우 최저가 통제가 불가능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연방도로국이 과거 27년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입찰참가자수가 많을수록 가격이 낮아지는 상관관계가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조사는 2001~2004년 국내 공공공사 통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최저가낙찰제를 발주자 재량권에 의한 선택제로 가는 것과 병행하여 PQ의 변별력 강화는 산업차원에서 논란이 있더라도 강화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한다고 하면서 현재와 같이 95% 이상이 통과하는 상태에서는 ‘운찰제’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예상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등록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생긴다. 페이퍼 컴퍼니는 PQ변별력 강화만으로도 충분히 걸러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등록 요건 강화는 국가나 혹은 지자체 몫이지만 PQ변별력은 개별 발주기관에서 차별화시킬 수 있는 과제다. 더구나 등록제 강화는 해외로부터 국내 시장진입 자체를 가로막는다는 더 큰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할 과제다. 최저가낙찰제에 맞서기 위해 PQ변별력 강화 방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현재와 같이 최저가낙찰제를 지속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