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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주택대출, 만기연장 아니라 채무조정 해야

보도일자 2012-08-09

보도기관 조선일보

최근 집값 하락과 거래 부진이 지속되면서 이른바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등 국민들의 주거 불안과 가계 자산 붕괴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불안과 우려만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일시적인 위기 모면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이자 수익에 대한 양보와 적극적인 가계 부채 연착륙 의지가 절실하다. 거시경제 여건이나 부동산 시장 상황으로 볼 때 다른 대안은 없다.

우선 부동산 대책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 지금 부동산 시장 위기는 시장 내부 문제라기보다 거시경제 영향이 더욱 크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취득세 감면, 분양가 상한제 폐지, 앙도소득세 중과(重課) 폐지 등이 시장 환경 개선에 도움은 되겠지만 위축된 수요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가계 부채 문제는 주택구입자금 대출뿐 아니라 생계형 대출까지 포함되어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은퇴 연령층인 50대 이상이 과도한 가계 부채와 연체율 증가의 중심에 놓여 있어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가계 대출 연착륙 대책은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민금융 지원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과 본질은 자산 보유 중산층에 있다. 정부는 이들의 문제가 부동산 경기와 거시경제가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인구 구조의 변화와 세계 경제 상황을 볼 때 지금의 경기 침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만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가계 부채 문제를 마냥 미룰 수도 없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거나 거치 기간이 종료되는 주택대출잔액은 약 80조원에 이른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규모다. 다들 위기 징조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로 볼 수도 있다. 정부나 금융기관은 만기 연장으로 문제 해결을 계속 미루고 있지만, 이는 한계 계층에 더 높은 가산금리를 적용하거나 제2금융권으로 내모는 빌미가 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만기 연장이 아닌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먼저 차주(借主)의 연령이나 경제 상황에 따른 차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즉 소득이 일정하고 상환 능력이 있는 30~40대라면 대출 상환기간이 20~30년 이상인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 대출로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차주가 실직했다면 일정기간 모기지 원리금 상환액을 감면해 주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중(多重) 채무자의 경우 제2금융권 등에서 빌린 고금리 후순위 대출을 좀 더 싼 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자보다 원금을 먼저 상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0대 이상 차주에 대해서는 주택 소유권의 일부나 전부를 금융기관에 매각한 뒤 그 집을 임차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 & lease back)''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차주는 이자 부담을 줄이고 주택 처분에 따른 주거 불안도 해소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부실한 주택담보대출 채권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산관리기구를 설립해 차압 위기에 놓인 주택이나 가계부채 조정을 위해 내놓은 처분주택을 일괄 매입 또는 임시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주택 전당포''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의 직간접적인 참여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