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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버려야 할 두 가지 문화유산

보도일자 2013-01-18

보도기관 건설경제

2013년도 정부 예산이 확정되었다. 당초 우려와 달리 SOC 예산은 24조3천억 원으로 전년대비 5.2% 포인트나 증가하였다. 그런데 건설인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허전하다. 지난 연말 대선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건설은 관심 밖이고 온통 복지 이야기뿐이다. 하우스푸어를 위한 부동산 대책 등이 있긴 하지만 건설인들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친다. 건설인들이 진실로 바라는 것은 건설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속 시원한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확실히 건설산업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아무도 건설투자가 식어가는 국민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는 건설투자가 장기적으로 국가경제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오히려 4대강사업 비판에서 보는 것처럼 건설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지고 있다. 건설산업이 위기라는 말은 단순히 시장침체만을 말하지 않는다. 건설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낮고 불신이 큰 것이야말로 정말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세월 탓, 남 탓 하며 그저 좋았던 시절만 떠올리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 건설산업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과거를 수요의존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수요창출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기업들은 여전히 수요의존시대의 타성에 젖어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이야말로 건설산업 위기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수요라는 관점에서 국내 건설산업의 역사를 개괄하여 보면, 분명 좋은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말까지는 건설산업의 황금기였다. 우리는 이 시기를 수요의존시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부 또는 공공부문으로부터 창출되는 수요는 넘쳐났고, 이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였다. 건설업체들은 그저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이 시기 우리 건설업체들은 근면과 성실로 정부와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켰으며, 자부심 역시 대단했다. 당연히 희생적이고 도전적인 건설산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이미지 역시 최고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사정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가 과도기였다면 2000년대는 확실한 수요창출시대가 되었다. 수요의존시대와 달리 수요창출시대에는 건설업체들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안정적 수요자로서 정부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시장중심의 민간부문은 격심한 경기변동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건설산업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변신에 실패하고 말았다. 건설산업이 지금 낙후산업, 삼불(三不)산업과 같은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변신의 실패에서 근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시장과 문화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시장이 바뀌면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응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건설산업은 이 점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시장은 분명 수요의존시대에서 수요창출시대로 바뀌었는데 건설기업들은 여전히 수요의존시대의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요의존시대에는 말 그대로 의존적 태도만으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요창출시대에는 건설기업 스스로 당당하게 자기 앞날을 개척하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건설산업 위기극복의 최대 과제는 문화혁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압축하면 제도와 의식을 말한다. 건설제도와 건설인 의식은 상호작용하면서 총체적 건설문화를 형성한다. 수요창출시대를 맞이하여 고착화된 과거의 제도와 의식을 청산하는 작업이 곧 건설위기 극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건설문화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음 두 가지 문화유산을 과감하게 버릴 것을 제안한다.

  첫째, 지나친 정부의존문화를 버려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 눈치를 보고, 정부 탓을 하고, 정부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의존적 문화를 버려야 한다. 이제 정부에게는 그런 역량도 의지도 없다. 고착화된 정부의존문화는 주종주의, 갑을의식, 명령지시문화 등과 같은 부정적인 문화들을 만든 뿌리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들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수요창출시대에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정부에 무조건 의존하려는 태도를 버릴 때 이런 고질적인 구시대 문화의 청산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 고착화된 업역주의를 버려야 한다. 울타리를 쳐서 시장을 갈기갈기 분할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것은 시장물량이 넘쳐나고 기술발전이 빠르지 않은 시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경쟁력 확보를 통하여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수요창출시대이다. 그렇다고 무한의 파멸적 경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업역의 틀을 버리는 대신 공정경쟁의 룰은 보다 강고하게 확립해야 한다. 동시에 업역주의를 대체하여 서로 다른 능력과 규모의 업체 간에는 보다 많은 협력체계가 가능하도록 적극 유도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