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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기술·기술인력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보도일자 2013-08-05

보도기관 건설경제

한 어린이 TV 오락프로그램에 ‘나 잘난이와 더 잘난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잘난 사람보다 더 잘났다는 사람이 있는가. TV에 등장한 ‘나 잘난이’는 자기 주장이기 때문에 더 잘난이(?)가 등장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잘난이’ 이름 경쟁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국내 건설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스펙이 뛰어난 사람, 그중에서도 선진국 대학 학위증이나 자격증 몇 개를 가진 사람들을 보통 ‘잘난 사람’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수요자인 기업은 필요한 사람만을 찾는다. 국내 기술자 4명 중 1명은 일자리가 없으며 5명 중 1명은 역량 평가에서 만점을 받는다. 해외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 중 첫째가 ‘글로벌 인재 부족’이다. 잘난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을 찾는 극단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

 최근 몇몇 대기업 중심으로 스펙 파괴 바람이 분다고 한다. 스펙보다 능력과 가능성을 보겠다는 것이다. 스펙만큼 기대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펙 쌓기에 올인(?)해 왔던 학생의 진로 준비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인재상이나 역량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를 수요자가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려 줄 책임이 있다. 기업은 이 점을 알면서도 조직과 인력 구조 문제로 인해 내놓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기술 사회와 사회과학, 인문 사회의 칸막이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벌 인재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필요한 인재에 대해 구체적인 명세서는 밝히지 못한다. 해외건설은 글로벌 인재 부족으로 소화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인재는 프로젝트관리(PM) 전문성을 갖춰야 하고 글로벌 언어 구사력이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디에서도 전문기술자는 찾지 않는다. 기술 전문가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설계·시공기술, 즉 생산기술을 아웃소싱하거나 혹은 자체 내 소화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필자 눈에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글로벌 1등 산업으로 올라있는 조선이나 IT, 그리고 자동차산업 등에는 반드시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경영진이나 오너의 판단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보다는 경영의 일관성이나 기업가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와 기술적 기반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판단이다. 조선이나 IT 등 국내 글로벌 1등 산업의 경쟁력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산업 스스로의 평가도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력과 이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인재기반 구축이 글로벌 1등 산업의 원동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해외건설 발주자의 최대 관심은 어떻게 하면 양질의 품질을 갖춘 건설상품을 최단 기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지에 있다. 발주자의 이러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근본적인 수단은 기술이 핵심이지 경영이나 경제, 긍정적인 사고 등 인문·사회과학 지식은 보완적 수단일 뿐이다.

 최근 국내 건설은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국내 건설기술력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인 것처럼 말한다. 조선이나 IT, 자동차산업을 보면 어김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 등 우리보다 인건비가 싼 국가와의 가격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건설은 신흥국 기업인 인도와 이집트,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두려워하고 있다. 싼 인건비 때문이다. 기술보다 가격 경쟁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인건비 때문이라면 미국이나 EU 기업들과는 충분히 가격 경쟁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더 두려워하고 있다. 건설이 너트와 크랙커 자리에서 탈출하려면 생산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건설의 경제영토를 전 세계로 넓혀 국내 건설의 상품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기술을 재평가해야 한다. 과거의 기술력 평가는 선진국 대비 몇 %로 했다. 좋은 기술력이란 상대적으로 최고의 품질과 성능을 가진 상품을 더 빨리 더 작은 값으로 생산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단순하고 명쾌해야 한다.

 과거엔 선진기업은 할 수 있지만 국내 업체가 못 하는 따라하기 식 ‘모방·추격’형 기술에 관심을 두었지만 이젠 ‘창조·선도’형 기술로 가야 한다. 기술력에 대한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 첨단만이 기술력이라는 사고도 바꿔야 한다. 알고 있는 기술도 조합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창조형 기술도 독립적이기보다 융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대세다. 눈에 띄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용어보다 기술이라는 낯익은 화두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과거 선박 건조장에서 2000t이 넘는 콘크리트박스(케이슨) 20개를 동시에 제작하여 15㎞ 떨어진 방파제를 건설하는 현장에서의 일화다.

 “바보야, 그게 기술이라는 거야”라던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이 공감을 얻는 한국건설로 다시 되돌아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