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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도로명주소가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들

보도일자 2013-12-18

보도기관 건설경제

최근 도로명주소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새주소의 활용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려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로명주소로의 전환의 본질은 그것이 우리의 공간 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도로명주소 시행은 ‘점’ 중심의 위치 인식 체계로부터 ‘선’ 중심의 위치 인식 체계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도로명주소와 관련하여 필자가 미국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 중 하나는 그들의 위치 인식 메커니즘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다.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도로를 참조하여 위치를 식별한다. 이를테면 “식당 A는 George Street에 있다”라든지, “식당 B는 George Street와 Jackson Street 사이에 있다” 또는 “식당 C는 George Street와 Main Avenue의 교차로에 있다”는 식이다.

 한편 우리는 한 지점의 위치를 식별할 때 주요 지점(대부분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건물)을 참조로 하여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식당 A는 강남역에서 밑으로 쭉 내려오면 있다”라든지 “식당 B는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에 있다” 또는 “식당 C는 ○○사거리에서 강남쪽 가는 길에 있다”는 식이다.

 이것을 좀더 일반화해서 얘기하자면 미국인은 선(line)을 참조하여 위치를 식별하는 인식 체계를 가진 반면, 우리는 점(point)을 기반으로 한 위치 인식 체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인식 체계 모두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선 중심의 인식 체계가 활용성이 높고 기대되는 편익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도로명주소가 활성화된다면 다방면에 있어 편익이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주소를 찾기가 쉬워진다. 기존의 필지 중심의 주소체계는 번지수를 부여함에 있어 일관성이 결여되어 주소의 위치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다. 반면 도로명주소 체계 하에서는 참조되는 지점으로부터 선형을 따라 목적지의 위치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점으로 유통·물류 분야에서는 막대한 편익이 예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도로명주소 체계로의 전환은 건설 분야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인프라 유지관리 분야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도로의 이력관리를 생각해 보자. 도로명주소가 시행되면 도로가 이름을 갖고 위치가 정확히 식별되기 때문에 도로 유지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기존의 도로관리는 파손된 도로가 발견되면 수선인력팀이 출동하여 땜질을 하는 식이었고, 어느 도로를 언제 보수했는지 기록을 남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도로명도 없을뿐더러 도로의 위치를 표현할 방법이 없거나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도로가 이름과 이정을 갖게 되었다. 즉, 체계적인 도로보수 이력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얘기다. 만일 도로보수 이력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예방적 관리가 가능할 수 있다. 도로가 파손되기 전에 파손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유지관리비용을 절감하고, 도로의 성능을 우수한 상태로 유지하기가 용이해질 뿐 아니라 예산의 불필요한 낭비를 차단할 수 있다.

 또한 도로명주소는 교통사고 맵핑이나 범죄 지도 제작 등 현재 국가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공간정보인프라 구축에도 매우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동안 도로에서 발생한 이벤트를 기록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도로마다 고유한 식별자(이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도로마다 이름과 이정이 부여되었으니 전국 모든 도로의 어느 지점이든 정확하게 식별,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 건물 뒤편 두 번째 길 맞은 편 도로”와 같은 애매모호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냥 “○○○길”이라고 하면 된다.

 현재 도로명주소 사용이 더디게 진행되고 일부 사람들이 반대를 하는 이유의 기저에는 기존의 인식 체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타성이 무의식중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일단 도로명주소에 익숙해지고 나면 위치와 공간을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그로 인해 다양한 편익이 함께 따라올 것이다. 익숙하지 않고 아직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면서 새주소 사용을 자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로명주소의 잠재적 편익과 편리함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명주소 시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