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로토닌형 건설문화를 만들자
보도일자 2014-04-10
보도기관 건설경제
50종이 넘는 인간 뇌의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마음 작용에 관여하는 물질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도파민(또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이 그것이다. 도파민은 호기심이 왕성하며 새롭고 기이한 것을 추구한다. 엔도르핀은 도파민과 유사하지만 훨씬 강력하다. 이들은 환희와 열광을 안겨주지만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이 문제다. 이에 반해 세로토닌은 위험을 회피하며 매사에 조심하는 면모를 보인다. 또한 자기조절 능력을 갖고 있다. 한편, 노르아드레날린은 즉흥적이며 충동적이다. 위험에 대비하여 긴장을 일으켜 일을 잘하게 해주지만 과잉되면 폭력으로 변하는 역기능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물질을 쾌적물질이라 부른다. 세 가지 모두 기분을 좋게 만들고 각성제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쾌적물질이라 하여 아무런 문제없이 우리 삶에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자 이시형은 엔도르핀이 한국 사회에 행복물질로 알려진 것은 오해라고 말한다. 엔도르핀은 일시적으로 격정과 환희를 안겨주지만 금단현상과 중독성으로 인해 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행복물질은 엔도르핀이 아니라 세로토닌이라고 말한다. 격정이 아니라 차분한 마음의 행복을 만드는 세로토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물질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식욕, 성욕과 같은 본능뿐만 아니라 아름다움, 발전, 이타심, 즐거움 등을 충족시키고 싶은 본성 또는 욕구를 갖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본성 또는 욕구가 충족되면 즐겁고 만족스럽고 편안해진다. 이때 우리 뇌에서는 세로토닌이라는 행복물질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잔잔한 감동과 쾌감을 주지만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처럼 결코 넘치는 법이 없고 중독되지도 않는다. 또한 분노와 폭력을 유발하기도 하는 노르아드레날린의 과잉 분비를 통제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인간 마음을 연출하는 세 가지 물질 개념은 사회의 문화적 특성과도 연결된다. 공격적인 노르아드레날린형과 열광적인 엔도르핀형의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역동적이다. 경쟁과 열정을 동반하는 이 물질들은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 되고, 따라서 성장기 사회에서는 순기능적이다. 고도성장기의 우리 사회가 그러했다. 그런데 사회가 성숙기 또는 정체기에 진입하게 되면 과도한 노르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의 분출은 역기능을 더 많이 제공한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경쟁심과 격정적인 태도는 사회에 긍정적인 활력을 제공하기보다는 폭력성과 집단적 우울증을 더 키우고 만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는 ‘피로사회’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성장 동력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한국사회가 그런 양상의 조짐을 보여 걱정이다.
이시형과 문화인류학자 이희수는 공저 <인생내공>에서 이제 우리 한국사회도 노르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에 과잉 의존하는 문화 관행을 벗어나 세로토닌형 문화를 키워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로토닌형 문화의 사회란 한마디로 선진국형 사회이다. 세로토닌형 사회는 단기적 성장과 역동성보다는 장기적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결과지향적 도전보다는 과정지향적 창의성을 더 선호한다. 성숙기로 진입한 시점에서 안정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세로토닌 문화를 키우지 못하면 공격 일변도의 노르아드레날린형 문화로 빠져들고, 그 결과 쇠퇴하거나 멸망하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우일까.
건설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건설산업은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산업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도전을 통한 가시적인 결과 성취에만 열광하는 엔도르핀형 문화를 바꿀 때가 되었다. 차분하게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보다 세분화된 시장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안정 지향의 세로토닌 문화를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경쟁 못지 않게 협력을 존중하는 세로토닌 문화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건설문화는 이전투구의 제로섬 게임이 난무하는 노르아드레날린형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쇠락의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체적으로 건설업계가 세로토닌형 문화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국민, 즉 수요자들의 의식과 행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제 주택을 투자의 수단이 아닌 거주와 이용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요구도 생활밀착형 시설과 기존 노후 시설의 개ㆍ보수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들의 건설산업에 대한 요구가 세로토닌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건설기업 및 산업의 내부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까지의 건설문화는 ‘빨리빨리’ 명령지시와 같은 엔도르핀과 노르아드레날린형 문화였다. 이제 이런 문화로는 더 이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런 문화로는 고급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젊고 창의적인 인재를 유치하지 못한다. 건설산업은 이제 안팎으로부터 세로토닌형으로 바뀔 것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물질을 쾌적물질이라 부른다. 세 가지 모두 기분을 좋게 만들고 각성제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쾌적물질이라 하여 아무런 문제없이 우리 삶에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자 이시형은 엔도르핀이 한국 사회에 행복물질로 알려진 것은 오해라고 말한다. 엔도르핀은 일시적으로 격정과 환희를 안겨주지만 금단현상과 중독성으로 인해 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행복물질은 엔도르핀이 아니라 세로토닌이라고 말한다. 격정이 아니라 차분한 마음의 행복을 만드는 세로토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물질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식욕, 성욕과 같은 본능뿐만 아니라 아름다움, 발전, 이타심, 즐거움 등을 충족시키고 싶은 본성 또는 욕구를 갖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본성 또는 욕구가 충족되면 즐겁고 만족스럽고 편안해진다. 이때 우리 뇌에서는 세로토닌이라는 행복물질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잔잔한 감동과 쾌감을 주지만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처럼 결코 넘치는 법이 없고 중독되지도 않는다. 또한 분노와 폭력을 유발하기도 하는 노르아드레날린의 과잉 분비를 통제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인간 마음을 연출하는 세 가지 물질 개념은 사회의 문화적 특성과도 연결된다. 공격적인 노르아드레날린형과 열광적인 엔도르핀형의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역동적이다. 경쟁과 열정을 동반하는 이 물질들은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 되고, 따라서 성장기 사회에서는 순기능적이다. 고도성장기의 우리 사회가 그러했다. 그런데 사회가 성숙기 또는 정체기에 진입하게 되면 과도한 노르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의 분출은 역기능을 더 많이 제공한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경쟁심과 격정적인 태도는 사회에 긍정적인 활력을 제공하기보다는 폭력성과 집단적 우울증을 더 키우고 만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는 ‘피로사회’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성장 동력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한국사회가 그런 양상의 조짐을 보여 걱정이다.
이시형과 문화인류학자 이희수는 공저 <인생내공>에서 이제 우리 한국사회도 노르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에 과잉 의존하는 문화 관행을 벗어나 세로토닌형 문화를 키워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로토닌형 문화의 사회란 한마디로 선진국형 사회이다. 세로토닌형 사회는 단기적 성장과 역동성보다는 장기적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결과지향적 도전보다는 과정지향적 창의성을 더 선호한다. 성숙기로 진입한 시점에서 안정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세로토닌 문화를 키우지 못하면 공격 일변도의 노르아드레날린형 문화로 빠져들고, 그 결과 쇠퇴하거나 멸망하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우일까.
건설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건설산업은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산업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도전을 통한 가시적인 결과 성취에만 열광하는 엔도르핀형 문화를 바꿀 때가 되었다. 차분하게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보다 세분화된 시장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안정 지향의 세로토닌 문화를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경쟁 못지 않게 협력을 존중하는 세로토닌 문화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건설문화는 이전투구의 제로섬 게임이 난무하는 노르아드레날린형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쇠락의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체적으로 건설업계가 세로토닌형 문화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국민, 즉 수요자들의 의식과 행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제 주택을 투자의 수단이 아닌 거주와 이용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요구도 생활밀착형 시설과 기존 노후 시설의 개ㆍ보수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들의 건설산업에 대한 요구가 세로토닌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건설기업 및 산업의 내부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까지의 건설문화는 ‘빨리빨리’ 명령지시와 같은 엔도르핀과 노르아드레날린형 문화였다. 이제 이런 문화로는 더 이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런 문화로는 고급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젊고 창의적인 인재를 유치하지 못한다. 건설산업은 이제 안팎으로부터 세로토닌형으로 바뀔 것을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