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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역(逆) U자 가설’은 틀렸다

보도일자 2018-01-23

보도기관 건설경제

소득수준이 증가하면 건설투자가 축소된다는 ‘역 U자(=∩) 가설’은 틀렸다. 이 가설은 1인당 소득이 일정수준에 도달할 때 까지는 건설투자가 늘지만, 그 이상일 때는 소득의 증가수준보다 건설투자의 증가속도가 느려져서 소득에서 차지하는 건설투자 비중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흔히 OECD국가의 소득수준과 건설투자 비중의 추이를 인용한다. 과거 OECD국가의 평균적인 추이를 보면, 1인당 소득이 1만 5천 달러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건설투자 비중이 증가하다가 그 이후부터는 감소했다. 이같은 사례를 통해 건설업계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SOC투자건, 인프라 투자건, 건설투자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OECD국가의 건설투자 비중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을 때도 줄었을까? 그 반대로 더 늘었다. 소득수준이 늘면서 건설투자 ‘비중’이 같거나 늘었다면, ‘건설투자액’은 더 크게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원인중 하나는 유지보수비 급증이다. 일정소득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경제성장 과정에서 건설했던 시설물들이 노후화되면서 유지보수비가 신규 투자비용보다 더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기준 유로컨스트럭트에 가입한 유럽 19개국의 건설시장에서 유지보수시장 비중은 51.5%로 신규시장보다 더 컸다. 또 하나의 원인은 소득효과가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좋은 인프라, 더 좋은 집, 더 좋은 빌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해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는 최근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6개 지자체의 1인당 지역총생산액(GRDP)과 1인당 인프라 자본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보았다. 만약 ‘역 U자 가설’이 맞다면, 그 추세선은 오목함수 형태로 나타났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선형의 추세선으로 나왔고, 지역 소득 수준의 변화에 따른 인프라 자본의 변화는 양의 상관관계(0.81)였다. 즉, 지역의 소득수준이 증가할수록 건설투자도 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와 해외의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소득수준과 건설투자의 관계를 다시 재설정한다면, “소득수준이 증가할수록 건설투자도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같은 사실을 간과했다. 소득 2만달러 전후로 해서 적절한 건설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과소투자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국가경쟁력이 하락했다. 오죽하면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미국 쇠망론(2011)>이란 저서에서 미국이 망한다면 그 원인은 낡아빠진 인프라에 있다고 했을까.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인식이 확연하게 달라져 있다. 머지않아 발표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1조달러 인프라 투자계획’은 반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도 2015년에 발표한 경기부양을 위한 장기 인프라 투자계획(융커플랜)에서 당초 2018년까지 3,150억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가 지금은 2020년까지 5,000억유로를 투자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건설산업과 같은 전통산업은 갈수록 그 비중이 줄어들고, 건설일자리도 로봇 등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컨설팅 기관들은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도 건설투자는 물론 건설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매킨지글로벌연구소(MGI)에서 최근 1∼2년 사이에 발간한 여러 건의 보고서를 보라. MGI는 2016년∼2030년까지 예상되는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연간 3.3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데 실제 투자는 연간 2.5조달러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해마다 8,000억달러 규모의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는 조사결과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작년 10월에는 2017년∼2035년까지 해마다 필요한 인프라 투자규모를 연간 3.7조달러로 4,000억달러 더 상향조정했다. 그 이유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세계경제 성장전망률이 더 높아졌고, 물류와 가치사슬의 디지털화, 자율주행차 등 인프라 관련 기술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더 많은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진다는데 있다. MGI는 이처럼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와 실제 투자와의 차이를 의미하는 ‘인프라 갭(Infrastructure Gap)’을 메워야 하고,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투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건설산업은 AI, 건설로봇 등을 통해 100% 자동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MGI는 건설산업의 잠재적인 자동화 비중을 절반도 안되는 47%로 평가했다. 건설일자리는 건축설계자, 엔지니어 같은 고급 기술자만이 아니라 목수, 기능공, 건설기계 운전사 등과 같은 중간이하 기술 및 기능인력도 모두 필요하다. MGI는 203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건설일자리만 8천만∼2억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도 경제성장률 3%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향후 5년간 약 50조원의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작년에 발표했다. 오랫동안 건설투자 축소를 정당화해 온 잘못된 ‘역 U자 가설’을 버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새로운 인프라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