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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하인리히 법칙과 경제 위기

보도일자 2018-11-26

보도기관 건설경제

1931년에 발간된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은 고전으로 손꼽힌다. 이 책의 저자인 허버트 하인리히는 미국 여행자보험회사에서 다양한 사고 통계를 정리하여 사고의 인과관계를 계량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흔히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부르는 ‘1 : 29 : 300 법칙’을 발표했다. 단 한번의 중대한 사고 이전에 이미 29번의 사고가 있었고, 더 이전에는 300번에 달하는 경미한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을 ‘2 : 10 : 88’이라는 또다른 숫자로도 제시했다. 산업재해 원인의 2%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인 때문이고, 10%는 안전하지 못한 기계적·신체적 상태 때문이며, 88%는 인간의 불완전한 행위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고 원인의 대부분은 인재(人災)라는 뜻이다.

건설현장의 대형 안전사고나 세월호 침몰 같은 대형 참사원인을 설명할 때도 하인리히 법칙이 종종 인용되어 왔다. 300건에 달하는 경미한 사고에다 그보다 더 심각한 29건의 사고가 대형 사고의 징후를 알려줬지만, 그 모든 징후를 간과하면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어디 건설현장이나 산업현장에서만 그럴까. 경제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만 해도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기 전부터 기업의 무리한 대출, 해외 금융시장의 불안, 정경유착, 차입경영, 금융부실, 부패관행 등등에 대한 수많은 경고음이 있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리먼 부도 사태 이전부터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과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경고음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금융위기가 현실화될 때까지 이같은 경고음은 소음에 불과한 것으로 무시되었다.

건설현장이나 산업현장의 재해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제위기나 금융위기도 반복된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로 애써 반복가능성을 부정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역사적으로 800년간 60여개국에서 금융위기가 반복되곤 했다. 새해에는 우리 경제와 건설산업에도 큰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높다. 새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부터가 비관론 일색이다. 건설수주는 5년내 최저 수준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건설투자는 이미 올해 2분기부터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침체의 속도가 빠르고, 그 폭도 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초대형 안전사고나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인리히는 작은 결함이 대형 사고로 연결되는 도미노 같은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유전적 내력이나 사회 환경을 당장 바꾸기는 어려울지라도 인간의 결함과 불완전한 행위 및 기계적·신체적 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할 수만 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하인리히는 초기 대응책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초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비용도 적게 드는 법이다.

세계적 물류기업인 페덱스는 최상의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1 : 10 : 100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불량이 생길 경우 즉시 고치는 데는 1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책임소재 규명이나 문책이 두려워 불량 사실을 숨긴 채 그대로 기업 문을 나서면 10의 비용이 들고, 나중에 그 물건이 고객 손에 들어가 클레임 건이 되면 100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적 품질경영 전문가인 조셉 주란도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품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예방비용, 평가비용, 실패비용이라는 세가지 범주의 비용은 상대적인 비율이 ‘1 : 10 : 100’이라고 발표했다. 예방비용은 실패비용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위기상황이건 예방적으로,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초기에 잘 대처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다. 만약 초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우리 경제나 건설산업은 아직은 위기상황의 초입이라고 본다.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악순환의 도미노 같은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잘못된 정책의 방향성과 속도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 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에 대한 기업의 입장과 산업 현장의 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에 로드맵을 발표한 건설업종·업역 개편작업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정책의 경우도 지속적으로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고 필요한 시정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민간 건설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만큼 인프라 투자 확대를 비롯하여 공공부문의 완충 역할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 건설인들의 기업가 정신 발휘도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낙관론과 모험정신을 요체로 하는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신규 투자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정부의 정책도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경제나 건설산업의 위기는 예정된 것도 아니고 결정된 것도 아니다. 경제주체들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지금 우리 경제나 건설산업의 위기를 알리는 징후는 차고 넘친다. 경제나 건설산업도 하인리히 법칙의 예외 영역이 아니다. 아직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하지 않은 만큼 얼마든지 초기에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