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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쓸모없는 것의 쓸모

보도일자 2019-03-25

보도기관 매일경제

우리가 지구상에 두 발을 딛고 서는 데 필요한 땅 크기는 얼마나 될까. 발바닥 크기만큼이면 충분한가. 장자(莊子)가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발바닥과 맞닿은 면적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땅을 다 파버린다면 아무도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서 있기 위해서는 전 지구가 다 필요한 것이다.
장자는 이처럼 발바닥 크기만큼 땅도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나머지 땅이 있어야만 쓸모가 있다고 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은 쓸모 있다는 것이다. 기업경영에서도 그런 사례를 종종 본다. 기업 경영자들은 날마다 수주, 매출, 영업이익을 놓고 씨름을 한다. 혁신이니 성장이니 하는 것은 배부를 때 하는 소리고, 발등에 떨어진 불은 생존이라고 한다. 기업이 생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는 구조조정은 대개 쓸모없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쓸모없는 것일까? 당장의 수주, 매출, 영업이익에 직접적인 기여를 못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R&D) 조직과 인력 같은 것이다. 이런 조직과 인력은 수주, 매출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비용만 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조조정 1순위로 삼거나 현장에 내보내서 수주와 매출 증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직접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수주와 매출을 담당하는 조직이나 인력은 장자가 말하는 발바닥과 직접 맞닿은 조그마한 땅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은 가격이나 시공 기술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 시장정보, 현지화, 경영 관리, 리스크 관리 등 수많은 요인이 있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 토대 위에서 가격이나 시공 기술력이 수주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수주는 과거에도 경험했듯이 사상누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수주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쓸모없는 것들의 뒷받침이야말로 쓸모 있는 것이다. 이처럼 조직과 인력, 글로벌 경쟁력도 더 크고 넓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