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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낮은 공사비가 탈법 부른다

보도일자 2019-12-04

보도기관 건설경제

최근 정부 회의에서 준법(遵法) 시공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해 보자는 다소 황당한 제안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발주자가 낙찰가격 절감에만 매몰되다 보니, 낙찰 후 적자를 면하려면 불법이나 탈법을 자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공공사 입찰에서 대형 건설사들은 대부분 예정가격의 90% 내외로 투찰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실행예산을 맞추려면 아무리 원가를 낮추어도 그 이하로는 투찰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되는 종합심사제의 낙찰률은 최근 80%를 밑도는 사례도 흔히 발견된다.과거 최저가낙찰제와 별반 다름이 없다.

  공사 원가는 정부가 제정한 원가 산정준칙에 의거하여 산정된다. 그런데 이렇게 산출한 공사 원가에서 무려 20%를 삭감하여 낙찰되는 현실은 과히 정상적이지 않다. 더구나 원가 산정에 활용되는 표준품셈이 크게 낮아졌고, 표준시장단가도 10년 가까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결국, 원가 산정에 문제가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피해를 계약상대방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통계를 보면, 지난 15년간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최근에는 불법체류자를 써야 간신히 노무비 원가를 맞추는 구조라고 한다. 기술개발은 뒷전이고, 낙찰을 위해 일반관리비나 이윤을 ‘0원’으로 써내는 입찰자도 많다.

  만약 정상적으로 국내 숙련공을 투입하고, 내구 연한 이내의 가설재나 기계장비를 활용하고, 폭염이나 미세먼지 시에는 공사를 중단하고, 불법체류자에게도 4대 보험과 주휴수당을 적용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령에서 정한 대로 준법 시공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공 원가가 최소 20%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턴키나 기술제안입찰도 오해가 많다. 다른 발주 방식과 비교하여 낙찰률이 높다는 지적인데, 이는 상식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낙찰률의 산정 기준이 되는 ‘예정가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주자의 사업예산과 비교하여 억지로 낙찰률 통계를 만들어 낸다. 턴키나 기술제안입찰은 사업예산이 공개된 상태에서 설계 경쟁이나 기술제안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설계가격이 발주자 예산에 근접할 수밖에 없다. 또 설계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입찰비용이 높아 큰 손해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러한 매몰비용이 입찰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외국은 어떠한가? 수년 전 주요국의 공공공사 낙찰률에 대하여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결론은 의외였다. 외국에는 ‘낙찰률’ 통계가 없었다. 조사대상 국가에서 ‘낙찰률’ 통계가 있는 곳은 일본의 국토교통성 정도였다.

  구미의 발주기관 자료를 보면, 어느 공사가 얼마에 낙찰되었다는 통계는 있다. 그러나 예정가격의 몇 %에 낙찰되었다는 통계는 없다. 아니, 예정가격 자체가 없다. 발주자 측에서 자체적으로 적산한 가격을 갖고 있으나, 대부분 공표하지 않는다. 발주자의 추정가격을 초과하는 낙찰도 허용한다. 발주자가 미처 생각지 못한 원가 상승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외국에서는 투찰가격의 적정성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일반적으로 과거에 준공된 동일 혹은 유사 공사의 코스트데이터를 토대로 km당 또는 ㎡당 단가 등을 활용하고, 여기에 그동안의 자재비나 노무비 등 물가변동을 추가하고, 해당 현장 여건이나 공사 난이도, 법령 변화 등을 고려하여 적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제는 ‘낙찰률’이라는 용어를 없애야 한다. 입찰가격의 적정성은 서구 사회와 같이 과거 준공단가를 토대로 그동안의 물가변동이나 법령, 시공기술 변화 등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표준시장단가는 계약 단가가 아니라 설계변경이나 물가변동이 포함된 준공 단가로 축적해야 한다. 또 자재가격이나 노무비지수 등을 활용하여 매년 업데이트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일반관리비나 이윤도 정상적으로 계상되어야 한다.

  만약, 낙찰률을 존치하려면, 저가(低價) 낙찰에 대한 판정 기준을 변경해야 한다. 서구에서 엔지니어의 추정가격(engineer‘s estimate)과 낙찰가격을 비교하면, 대부분 95% 수준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평균 낙찰률은 92% 내외이다.

  부족한 공사비는 결국 불법과 탈법으로 귀결되고, 수많은 분쟁과 클레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건설산업에서 급증하고 있는 공사비 관련 소송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더 이상 공공사업에서 준법 시공을 시범사업으로 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