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언론기고

진도대교- 사장교 연륙 시대를 열다①

보도일자 2011-04-13

보도기관 건설경제

현수교ㆍ아치 등의 다리 형식들이 고대 인류로부터 그 기원을 찾는 반면 사장교(斜張橋, cable-stayed bridge)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일반적으로 사장교의 개념은 17세기 베니스(Venice)의 베란티우스(Verantius)가 교탑(橋塔)에 몇 개의 체인을 연결하여 가설한 나무다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철탑과 stayed cable을 갖춘 나무다리도 건설되었으며, 19세기 들어 영국의 레드패쓰(Redpath)와 브라운(Brown)이 경간(徑間) 34m의 King’s Meadow 보도교(步道橋)를 와이어 스태이드 케이블(wire stayed cable) 형식으로 설계(1817년)하였다. 이 설계에 사장교의 이론적 개념이 최초로 도입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821년에는 프랑스의 Poyet가 높은 탑에 강봉(鋼棒)을 매다는 형태를 제안하기도 했다.

스웨덴 Strmsund교가 근대 사장교의 시초

그러나, 19세기를 지나 20세기 초반까지도 사장교는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특히, 1818년과 1824년의 두 번에 걸친 붕괴 사고가 사장교 발전의 결정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1818년 영국의 트위드(Tweed)강 보도교(79m)가 바람에 의한 진동으로 체인 지주(支柱)의 조인트(joint)가 파괴되면서 붕괴되었으며, 1824년에는 독일의 잘레(Saale)강의 78m짜리 다리가 마침 보트 경주를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 운집해 있던 상황에서 붕괴되고 말았다. 사장교 형식을 한 이 두 다리가 무너진 이후 기술자들은 강을 건너는 다리로 현수교를 더욱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사장교 형식은 템즈(Thames)강의 알버트(Albert)교, 뉴욕의 브루클린(Brooklyn)교 등에서와 같이 현수교의 보조적 수단으로만 그 명맥을 이어왔다.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사장교가 본격적으로 시공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이다. 즉, 패전한 독일이 전쟁 중에 파괴된 수많은 교량들을 재건하면서 사장교 형식을 주목했던 것이다. 당시 독일로서는 철강재의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기에, 다리의 중량을 최소화하는 공법이 절실했으며, 그 대안으로 사장교 형식이 부상했다. 더욱이 사장교는 공정을 단축시키는 경제성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