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자본으로 건설한 최초의 다리- 원효대교②
보도일자 2011-04-12
보도기관 건설경제
디비닥공법의 도입
서울시에서는 당초 원효대교의 건설 사업을 입안하면서, 교량 구조는 경제성을 고려하여 공사비가 저렴하고 시공 또한 용이한 PC빔 및 플레이트 거더 방식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기존 한강 다리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었다. 즉, 이들 교량이 실용성에만 치우쳐 미적(美的)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 때가 되었다’는 사회적 요구이기도 했다. 이렇듯 서울의 조형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서울시에서는 원효대교에 디비닥공법을 적용키로 확정하였다.
디비닥공법은 1951년 독일의 디케르호프 & 비트만(Dyckerhoff und Widmann)사가 개발한 신공법(FCM : Free Cantilever Method)으로, 동바리없이 이동식 작업차(form traveller)를 이용하여 순차적으로 캔틸레버 상부구조를 시공한 후 경간 중앙에서 캔틸레버 거더를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이 공법은 대부분의 작업이 이동식 작업차에서 이루어지므로 전천후 시공이 가능하며, 시공 단계마다 오차의 수정이 가능해 시공의 정밀도를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경간 거리가 길어 전체적인 외관미(外觀美)를 추구하거나 산악지대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교량의 건설에 적합한 공법이다. 따라서, 한강의 점토질 지반에 장경간 교량을 건설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고 교량의 내구성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으며 PC 강봉 등 필수 자재의 수입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아름다운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묻혀버렸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면서 원효대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디비닥공법을 적용하여 건설되었다. 독일에서 이 공법을 시험 적용했던 라인강 교량의 경간이 62m였던 데 비해 원효대교는 100m였기에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더욱이 국내에는 이 공법의 시공 경험자가 전무하였으므로 일부 기술자를 독일로 보내 연수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원효대교 건설 현장은 국내외에서 기술자 등 5,000여 명에 가까운 견학자들이 몰려들었었다.
서울시에서는 당초 원효대교의 건설 사업을 입안하면서, 교량 구조는 경제성을 고려하여 공사비가 저렴하고 시공 또한 용이한 PC빔 및 플레이트 거더 방식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기존 한강 다리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었다. 즉, 이들 교량이 실용성에만 치우쳐 미적(美的)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 때가 되었다’는 사회적 요구이기도 했다. 이렇듯 서울의 조형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서울시에서는 원효대교에 디비닥공법을 적용키로 확정하였다.
디비닥공법은 1951년 독일의 디케르호프 & 비트만(Dyckerhoff und Widmann)사가 개발한 신공법(FCM : Free Cantilever Method)으로, 동바리없이 이동식 작업차(form traveller)를 이용하여 순차적으로 캔틸레버 상부구조를 시공한 후 경간 중앙에서 캔틸레버 거더를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이 공법은 대부분의 작업이 이동식 작업차에서 이루어지므로 전천후 시공이 가능하며, 시공 단계마다 오차의 수정이 가능해 시공의 정밀도를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경간 거리가 길어 전체적인 외관미(外觀美)를 추구하거나 산악지대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교량의 건설에 적합한 공법이다. 따라서, 한강의 점토질 지반에 장경간 교량을 건설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고 교량의 내구성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으며 PC 강봉 등 필수 자재의 수입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아름다운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묻혀버렸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면서 원효대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디비닥공법을 적용하여 건설되었다. 독일에서 이 공법을 시험 적용했던 라인강 교량의 경간이 62m였던 데 비해 원효대교는 100m였기에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더욱이 국내에는 이 공법의 시공 경험자가 전무하였으므로 일부 기술자를 독일로 보내 연수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원효대교 건설 현장은 국내외에서 기술자 등 5,000여 명에 가까운 견학자들이 몰려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