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자본으로 건설한 최초의 다리- 원효대교①
보도일자 2011-04-11
보도기관 건설경제
한강의 13번째 다리로 건설된 원효대교(元曉大橋)는 1978년 7월 17일에 착공하여 3년 3개월의 공사 끝인 1981년 10월 27일 개통하였다. 원효대교의 건설 공사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민간 자본 유치 교량 건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조명을 받았다. 즉, 1975년부터 원효대교의 민자 건설을 추진해오던 서울시는 1977년 8월 시공 방식을 ‘디비닥(Dywidag)공법’으로 확정하고, 12월에는 당시 5대 건설업체에 ‘원효대교 건설 민자유치사업으로 시행 계획 통보 및 참여 여부’를 타진하였다. 조건은 건설 후 일체의 시설물을 시유화하고 향후 20년 동안 통행료를 징수하여 건설비를 회수케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다리의 건설 공사는 동아건설이 맡았다. 준공 당시의 다리 규모는 연장 1470m, 노폭은 20m로 4차선(15.4m) 차도와 2차로(4.6m)의 보도를 구성하였다. 교량 하부구조는 우물통 기초, 교각은 V자형으로 시공하였다. 상부구조는 콘크리트 박스 거더 타입이다. 다리 건설과 관련된 보상비 20억원은 서울시에서 부담했으나, 나머지 공사비 225억원은 전액을 시공사인 동아건설이 투입하였다.
자발적ㆍ무조건 헌납…‘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준공ㆍ개통 이후 한 달 동안의 무료 통행을 거친 후 유료 통행을 시행하였으나, 원효대교의 통행료 징수에 대한 시중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한강 다리 가운데 유일하게 통행료를 징수했기에 많은 차량들이 원효대교를 기피, 우회함으로써 당초의 원활한 교통 소통이라는 목적도 무색케 하였다. ‘동아그룹 50년사’에 의하면, ‘약 1년 동안의 통행료 징수액은 10억원이었다. 이 금액은 투자비의 공금리에 의한 이자 계산 분기점을 웃도는 규모였으나 투자비 225억원의 회수를 위해서는 충분한 금액이 되지를 못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원효대교의 운영 관리는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1983년 1월 12일 동아건설 이사회는 ‘원효대교를 서울시민의 편의와 교통의 원활한 소통, 그리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공익 기업의 정신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기부채납’하기로 의결하였다. 그 이튿날인 1월 13일, 동아건설은 당시 김성배 서울시장에게 원효대교의 ‘헌납서’를 전달하였으며, 1983년 2월 1일 0시부터 모든 차량이 원효대교를 무료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그룹 50년사’는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 어느 기업인이 건설 중이던 공장을 국가에 헌납한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정치적 사건 때문에 발생한 타의의 결정이었지 자발적인 헌납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설물에 대한 자발적이고 무조건적인 헌납은 동아건설의 원효대교 헌납이 최초의 사례…’라고 밝히고 있다.
이 다리의 건설 공사는 동아건설이 맡았다. 준공 당시의 다리 규모는 연장 1470m, 노폭은 20m로 4차선(15.4m) 차도와 2차로(4.6m)의 보도를 구성하였다. 교량 하부구조는 우물통 기초, 교각은 V자형으로 시공하였다. 상부구조는 콘크리트 박스 거더 타입이다. 다리 건설과 관련된 보상비 20억원은 서울시에서 부담했으나, 나머지 공사비 225억원은 전액을 시공사인 동아건설이 투입하였다.
자발적ㆍ무조건 헌납…‘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준공ㆍ개통 이후 한 달 동안의 무료 통행을 거친 후 유료 통행을 시행하였으나, 원효대교의 통행료 징수에 대한 시중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한강 다리 가운데 유일하게 통행료를 징수했기에 많은 차량들이 원효대교를 기피, 우회함으로써 당초의 원활한 교통 소통이라는 목적도 무색케 하였다. ‘동아그룹 50년사’에 의하면, ‘약 1년 동안의 통행료 징수액은 10억원이었다. 이 금액은 투자비의 공금리에 의한 이자 계산 분기점을 웃도는 규모였으나 투자비 225억원의 회수를 위해서는 충분한 금액이 되지를 못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원효대교의 운영 관리는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1983년 1월 12일 동아건설 이사회는 ‘원효대교를 서울시민의 편의와 교통의 원활한 소통, 그리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공익 기업의 정신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기부채납’하기로 의결하였다. 그 이튿날인 1월 13일, 동아건설은 당시 김성배 서울시장에게 원효대교의 ‘헌납서’를 전달하였으며, 1983년 2월 1일 0시부터 모든 차량이 원효대교를 무료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그룹 50년사’는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 어느 기업인이 건설 중이던 공장을 국가에 헌납한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정치적 사건 때문에 발생한 타의의 결정이었지 자발적인 헌납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설물에 대한 자발적이고 무조건적인 헌납은 동아건설의 원효대교 헌납이 최초의 사례…’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