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언론기고

[시론] 문책보다 질책을 앞세울 때다

보도일자 2011-05-09

보도기관 건설경제

현재 건설산업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가계 및 개인 부채 증가로 부동산 거래가 급감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이 주도하는 민간시장의 빈 자리을 메워 줄 공공시장도 정부 및 공공기관들의 재정건전성 확보 때문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해외건설시장으로 버틴다지만 6만여 기업 중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1%에 불과해 시장 침체의 버팀목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 중 26개사가 이미 워크아웃 상태이며, 이달에만 30위권 2개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권은 가뜩이나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들에 대출금을 갚으라는 압력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는 사업의 수익성을 담보로 한 사업금융(PF)은 없고 건설업체들의 지급보증을 담보로 한 기업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면 타협의 여지없이 자금 회수 압박을 받게 된다. 당분간 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는 기업들은 자구책으로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는 이유다.

 비교적 경영 상태가 양호한 기업들이 자금난을 이유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사실을 두고 오너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는 인상이 짙다. 다분히 문책성 책임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사태의 책임자를 문책한다 해도 뾰족한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우리 건설산업은 지금까지 부동산 불패신화에 길들여져 왔다. 과거에도 내수시장이 침체했을 때는 언제나 정부에 대책을 요구해 왔다. 아직도 건설해야 할 잠재수요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수치로도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시설 보유량이 OECD 평균값에 못 미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주택보급률이 100% 미만인 시장에서는 부동산 불패론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과거 40년간 GDP가 101배 증가한 반면 육상 도로 연장은 7배 증가에 그쳤으니 건설산업의 체감지수는 여전히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겼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국내 부동산시장에도 재고폭탄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미분양사태가 있었지만 대기 수요가 있어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양적 공급에서 시장 수요자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질적 공급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시장의 변화 흐름을 상당 수준으로 이해했던 기업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흐름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경제에 순환 사이클이 있듯이 건설경제도 사이클을 타는 것뿐이라는 인식이다. 일반 경제와 달리 건설경제는 수요와 공급량이 연동되기 때문에 수요 없는 공급을 기대하기 힘들다. 시장 흐름을 인정하라는 질책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시장 침체와 맞물려 기업들의 채산성마저 심각한 위기에 내몰려 있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사원가에 거품이 많아 건설업체들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저가낙찰제 확대를 통해 국고를 저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거품론이 사실이라면 지난 한 해 동안 건설기업들의 평균 손실액이 164억원인 데 반해 산업 전체 평균 소득액은 613억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 2010년 국내 산업 전체 평균 이자보상비율이 642.3%임에 비해 건설업은 49.9%로 대출금 이자의 절반을 그동안 벌어들인 충당금으로 갚아야 할 정도로 채산성이 낮다.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제때 대응하지 못한 잘못은 문책보다 사실을 인정하라는 질책이 필요하다. 문책은 결과 처리에 비중을 두지만 질책은 문제 해결을 독려하는 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개인가계나 공공부채 해결은 국가 아젠다로 인식하면서 건설업과 금융권이 처한 어려움은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책이나 비난은 일시적인 대리만족은 할 수 있으나 방치함으로써 더 커진 상처를 수습하는 데는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2010년 말 기준 GDP 1조달러와 개인소득 2만달러를 넘겼다. 시장은 성숙했고 소득 향상은 국민의 눈높이도 높였다. 일률적인 문책보다 질책을 통해 회생 가능한 기업을 선별하는 정부와 금융권의 대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당장에는 대출금 회수보다 대출기간을 연장해 주는 대책이 필요하다. 대출기간 연장과 함께 기업들의 자구 노력을 요구하는 게 더 합리적으로 판단된다. 최근의 사태를 통해 기업들은 매출을 키우기보다 현금흐름 관리가 중요함을 인식하는 학습효과를 가졌을 것이다. 과거 물량크기에 목을 매던 기업들도 이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 희망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