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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Hot Potato] "기술 평가 배제는 글로벌 추세 역행"

보도일자 2011-06-26

보도기관 한국일보

입찰자에 대한 질적 평가가 배제되면 건설업체의 기술 개발을 저하시키고, 부적격한 업체가 낙찰자가 되는 역선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공사 입찰에서 가격경쟁은 필요한 수준을 넘어 거의 절대적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격만을 가지고 낙찰자를 결정하는 것은 심각한 폐해를 유발할 수 있다.

가격만을 평가한다는 것은 입찰자의 기술력이 동일하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입찰자의 기술력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입찰자에 대한 질적 평가가 배제되면서, 건설업체의 기술 개발을 저하시키고, 부적격한 업체가 낙찰자가 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최근 건설업의 현실을 보면, 공공공사 축소와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100대 건설사의 30% 이상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상태에 있다. 건설업 등록업체의 30%가 지난해 단 1건도 수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 상태에서 최저가낙찰제 확대는 견실한 업체마저 부도 위기로 몰아갈 우려가 있다. 특히 최저가낙찰제가 확대 적용될 예정으로 있는 100억∼300억원 규모의 공공공사는 주로 지방 중소건설업체의 수주 영역으로서, 지역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선 최저가낙찰제의 문제점은 성실시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데 있다. 입찰과정에서 덤핑 심사를 걸러내는 과정이 있다고는 한나, 실제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이뤄진 적자시공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 공사 10건중 8건 이상이 적자가 불 보듯 뻔한데도 기업의 현금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낸 적자시공이라고 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예정가격 산정 과정에서 실적단가 적용이 확산되면서 적자시공 폭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리한 저가 낙찰은 원도급 업체뿐만 아니라, 그 폐해가 하도급 업체, 자재납품업체, 장비임대업체 등에 연쇄적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상생이 아닌 공멸의 우려마저 높아질 수 있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해 위법ㆍ탈법행위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될 뿐 아니라 부실시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시설물 안전에 대한 위협도 커진다. 원가절감에만 치우쳐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숙련된 기능공이나 외국인 근로자 투입도 증가될 수 밖에 없다. 최근 노동부 발표에서 보듯이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의 90%가 최저가낙찰제 현장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사례에서 드러났듯, 최저가 공사 현장에선 안전에 신경 쓸 비용과 여유조차 없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외국의 예를 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과거에는 최저가낙찰제를 널리 활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원도급 업체와 하도급간 분쟁 빈발, 하자보수비용 증가, 구조물 수명 단축, 산재 증가 등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는 점을 깨닫고, 최근에는 가격경쟁을 배제하고 최고가치(Best Value) 방식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공공공사의 90% 이상이 종합평가방식으로 발주된다. 최저가 잣대만을 수주의 기준으로 놓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글로벌 추세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술경쟁을 확대하고 건설업체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점에서 단순히 가격경쟁만을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물론 건설업계의 공사비 부풀리기와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공공공사 입찰에서 예산절감이 차지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격만을 가지고 낙찰자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적자시공을 당연시하는 정부와 업계 풍토 또한 바로 고쳐져야 할 대목이다. 기술력 있는 업체를 우대하고, 적격업체와 부적격 업체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