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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타산지석 日 전력난

보도일자 2011-08-09

보도기관 아시아경제

얼마 전 일본을 들렀을 때다. 제6호 태풍이 일본 남부와 도쿄 지방을 지나갈 것이라는 전망에 일본 전체가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예약했던 항공편도 결항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지에서 통보받은 내용이었다. 웬만한 지진이나 태풍에는 이력이 붙은 일본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라 보였다. 당초 예상했던 태풍의 진로는 도쿄를 거처 동북부 센다이지방과 후쿠시마 원전 지역을 거치는 것이었다. 지난 해일로 인해 잔해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 폭우가 쏟아질 경우 엎친 데 덮친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지역은 가뜩이나 약해진 지반에 폭우가 내릴 경우 예측하지 못할 추가 사고 발생을 두려워했다.

한여름을 맞고 있는 일본은 현재 전력난에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다. 공급 여력을 나타내는 예비율은 고사하고 현재 상태에서도 이미 전력공급 예상 부족량이 3~4%에 이를 정도로 불안하다. 도쿄 지방은 가정, 모든 건물, 영업장 등에 전력소비 20% 줄이기와 함께 실내 최저 온도를 28℃로 높여 놨다. 현지에서 머물렀던 호텔의 실내 온도와 냉방장치 리모컨도 아예 28℃로 고정시켜 놨다. 일본 정부가 현재 상태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력난 해법은 국민들에게는 인내심을, 기업들에는 절전 운동에 동참한 것을 적극 요구하고 권장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요구하는 인내심과는 전혀 별개 문제로 일본 기업들은 전력 공급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외국으로 제조공장을 이전할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칸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책의 하나로 추가 원전은 고사하고 기존 원전마저 폐쇄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아직은 언제 폐쇄할 것인지 아니면 재가동할 것인지에 대한 확정적인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정부의 수습책을 보는 국민이나 기업들의 시각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국민들은 전체 전력 생산량의 28%를 넘는 원전을 중단할 경우 대체 에너지원이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 확대는 국민들이 비싼 전기료 지불을 받아들였을 때 가능하다. 현재도 일본 가정용 전기료는 한국보다 2.7배 정도 비싸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30% 이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전혀 동의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이유는, 원전을 대체할 발전소 건설이 빨라도 지금부터 5년 이상은 걸려야 해결될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단 하루가 급한 업체들로서는 자연스럽게 공장 자체를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내심보다 생산 여력과 기업 생존을 더 중요시하는 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력 수급은 물론 자연재해 빈도와 강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전체가 불안감에 싸여 있는 것은 최근 예측 불가능해진 자연재해,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 피해와 무관하지 않음을 일본에 머무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상습적인 자연 재해에 대해 잘 짜인 각본을 가진 일본이지만 빈번해지고 또 강력해지는 이상 기온 현상에 대해 불안심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매뉴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자연재해가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있어 일본 특유의 인내심마저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한국도 최근에 발생했던 자연재해가 일본 영토에서 생긴 일이라는 판단만으로 머물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국내에서도 원전의 안전성 논쟁과 함께 원전 건설의 지속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현재로서는 원전의 경제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발전소는 보이지 않는다. 돈이 더 들더라도 원전의 안전성을 높여 전력 생산 비중을 높여가는 방법 외에는 달리 보이지 않는다. 선거 표심만을 의식한 인기 발언 식 주장이 이 땅에서는 힘을 받지 않도록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