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언론기고

[기고] 땅콩주택과 깡통주택

보도일자 2011-08-21

보도기관 머니투데이

아파트먼트 하우스''라는 용어가 국내에 첫 등장한 지 50여년 만에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잡았다. 땅은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도시화로 인한 인구밀집을 해결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지만 높은 재산가치와 생활 편의성 등에 힘입어 빠르게 주택의 주종을 이뤘다. 1970년대에는 여의도, 1980년대에는 강남, 1990년대에는 수도권 5대 신도시 등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이어졌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주거문화가 정착됐다. 이 과정에서 가격 폭등이나 투기 열풍, 또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기형적인 규제 도입 등의 일부 부작용이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에도 짓기만 하면 팔리고 멈출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집값은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오래된 모습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는 듯 싶었지만 곧 옛 추세를 되찾았다. 10년이 지난 현재 다시 한번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 주택시장이 주춤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왠지 과거와는 다른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현재의 주택보급률, 미래의 가구 및 인구 구조, 베이비 붐 세대의 동향 등을 감안할 때 선호하는 주거 형태나 집값 등에 있어 구조적인 전환이 예상된다. 땅콩주택이 인기를 끌고 ''하우스 푸어''라는 용어가 회자되는 상황이 그러한 조짐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들어 땅콩주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땅콩주택은 하나의 필지 안에 두 채의 집을 지은 모습이 마치 땅콩 껍질 속에 땅콩이 붙어있는 것과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미 미국 등지에선 두 세대용 집을 뜻하는 듀플렉스(duplex)라는 명칭으로 보편화됐다. 한 개의 필지에 두 가구가 분담해 집을 짓는 만큼 비용이 저렴하면서 마당과 다락방까지 갖춘 단독주택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땅콩주택이 아파트를 대체할 주거의 형태로 보기는 어렵지만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를 떠나 여유롭고 쾌적한 삶을 즐기려는 새로운, 또 다양한 주거문화에 대한 수요가 현실화되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발 위주의 획일적인 주거환경인 아파트에 대한 반작용으로 땅콩주택과 같은 새로운 주거 형태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집값이 안정되면서 요즘 ''집을 보유한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의 ''하우스 푸어''가 속출하고 있다. 재산가치를 고려해 상환능력 범위를 벗어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했지만 집값은 오르지 않고 대출이자 갚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이후를 대비해 재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오랜 염원이던 집값 안정이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더욱 용이한 미국의 경우에는 집값보다 대출금이 더 많은 이른바 ''깡통주택''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깡통주택의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주택의 실질가격 하락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주택시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상품이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쉽게 사업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건설업체의 발빠른 대응과 혁신이 생존을 위한 조건이 됐다. 재산 가치를 보고 주택을 구입하는 시기도 지나갔다. 주택을 소유하느냐 마느냐, 어떠한 주거 형태를 선택하느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될 일이다. 문제는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전에, 또는 바뀐 것을 모르고 과다하게 부동산에 묶여버린 업체와 개인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이들에 대한 출구전략이 고민이다.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