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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기술력 있으면 수주 예측 가능해야

보도일자 2011-10-12

보도기관 건설경제

우리나라 공공공사 입찰제도는 문턱이 낮다. 그러다보니 수십, 수백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 당연히 해당 분야에 전문기술을 갖춘 업체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 아무리 기술력을 확보하고 전문인력과 장비를 갖췄더라도 공사를 수주할 확률은 그에 비례해 높아지지 않는다. 그 결과 현장소장을 낙찰 후 뽑겠다는 업체도 나타나고,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풍토도 사라지고 있다.

 또, 추정가격도 공개하고 있어 원가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심지어 견적 업무도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당 공사에 기술력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원가분석이 가능해야 하고, 설계내역을 검토해 더 우수한 기술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발주처에서 기술제안서를 받겠다고 하면,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물론 입찰 비용이 과도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등급제한 입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3등급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하는데 공동도급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다보니 시공실적이나 기술력이 없는 업체도 상위 대기업과 공동도급을 통해 버젓이 공사를 수주한다. 기술력을 믿고 단독으로 입찰한 중소업체로서는 당연히 불만을 갖게 된다.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시장 실패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점은 현행 입찰제도로 인해 모든 건설업체가 하향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업체의 전문화를 유도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건설업체를 보면, 중소업체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전문 분야나 특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터널 시공을 잘한다든지, 하수관거는 어느 업체가 최고라든지, 중소업체라 할지라도 대형 업체와 당당히 기술로 경쟁하는 사례가 많다. 또, 선진국에서는 시공능력에 자신이 없는 분야는 절대 입찰에 들어가지 않는다. 잘못해서 공사를 망치면 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곧바로 퇴출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단지 자판만 눌러 하루에도 수십 건 입찰에 참여하는 국내의 현실을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중소업체까지 문어발 수주가 나타나고, 어쩌다 운 좋게 낙찰받은 공사를 시공하다보니 전문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국내에서 이름 있는 중견업체도 해외 진출을 두려워한다. 자신만의 주특기나 전문분야가 약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입찰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공사마다 기술력 있는 업체 위주로 자격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입찰 문턱을 높이면 대부분의 입찰자가 아우성이다. 물리적  장벽만 높이다 보니 대형업체에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과거 시공실적에 대한 질적 평가를 중시해야 한다. 또, 해당 프로젝트의 핵심공법에 대한 시공경험과 기술력을 평가해야 한다. 기술개발투자나 인력 평가도 해당공사 중심으로 하는 것이 요구된다. 단순히 문턱만 높일 것이 아니라, 과잉자격(over-qualified) 업체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등급제한 입찰을 확대하되, 해당 등급 내에서는 옥석을 가리는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또, 중앙집중 발주라는 한계도 개선해야 한다. 입찰자 측에서는 입찰자격사전심사(PQ) 문턱이 높아지면 모든 공공공사에서 입찰 참여가 제한되므로 결사적으로 항전하게 된다. 따라서 해법도 수요기관의 자율성 부여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사전심사는 획일적인 평가항목과 배점을 두지 않고, 발주자의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각 발주공사 건별로 위원회를 구성해 입찰자의 자격을 심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달청에서 입찰 프로세스를 담당하되,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이나 주관적 심사에 있어서는 수요기관의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 수요기관에서는 입찰자의 과거 시공사례를 평가해 불이익을   줄 수 있으며, 공사유형별로 반드시 대형업체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도 가능할 것이다.

 기술능력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계약자로서의 자질 심사도 강화해야 한다. 우선 PQ신인도 평가 시 배점한도를 없애 부적격 업체의 입찰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 입찰자가 신인도(信認度) 평가에 민감한 이유는 기업 단위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신인도에서 점수가 나쁘면 모든 공사 입찰이 제한된다. 따라서 신인도를 공사유형별로 평가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항만’ 분야에서 부실벌점이 많다면, 향후 일정기간 ‘항만’공사 입찰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부여하되, 여타 공사 수주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사전자격심사(Pre-Qualification)가 Free Qualification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앞으로 최적의 자격을 갖춘 자만이 입찰에 참여토록 하고, 특화된 기술력이 있다면 해당 분야의 공사 수주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