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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건설업 등록기준 강화해야

보도일자 2012-03-13

보도기관 건설경제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 

 최근 건설업에서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런데 다른 업종, 예를 들어 엔지니어링이나 감리업종은 페이퍼컴퍼니 논란이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건설업의 등록 조건이 낮고, 공공입찰제도를 포함해 사후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우선 엔지니어링업을 운영하려면 철도, 상하수도, 수자원 등 분야별로 5명 이상의 기술자격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 즉, 정부가 발주하는 10여개 분야의 건설엔지니어링 용역 입찰에 자유롭게 참여하려면 적어도 30명 이상의 전문인력을 갖춰야 한다. 또 감리업을 영위하려면 일반감리업은 15명, 종합감리업은 25명의 기술인력을 갖춰야 한다.

 반면, 시공을 담당하는 종합건설업은 5∼11명의 기술인력을 보유하면 된다. 즉, 건설업 등록조건은 엔지니어링이나 감리업종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1건당 평균 수주금액을 보면, 엔지니어링용역 1억∼2억원, 감리 5억∼6억원 수준인 반면, 종합건설공사는 15억∼20억원에 달한다. 즉, 건설업의 수주 규모가 훨씬 크며, 사후적으로 계약이행이나 하자담보 등을 직접 책임지는 당사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등록조건이 낮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토공사나 철근콘크리트 등 하도급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은 2명만 되면 등록이 가능하다. 이는 사실상 1인 기업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며, 페이퍼컴퍼니가 창궐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사실 최근 5년간 신규 창업한 전문건설업체는 1만개를 넘어서고 있다. 전문건설업체는 하도급을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진입규제를 완화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은 하도급 이외에, 수주액의 40%는 발주자로부터 직접 원도급을 받는 주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1975년 전문건설업 면허를 도입한 배경을 보면,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노무 중심의 하도급자를 양성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건설생산체제는 기계화가 급속히 진전돼 왔다. 따라서 전문건설업 등록제도도 이러한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즉 기계화된 공종은 해당 공사에 적합한 기계ㆍ장비와 기술인력을 갖췄는지를 검증해야 하며, 노무하도급 중심의 전문공종은 직접 시공이 가능한 기능공 중심의 시공조직을 제대로 갖췄는지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진입규제는 경쟁을 저해하고 지대추구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건설업은 그동안 면허제의 등록제 전환, 실적제한 완화, 겸업제한 폐지 등 진입규제가 크게 완화되면서 공급자 과잉이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등록업자의 25% 이상이 단 1건도 수주를 못했다는 점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수주도 없는 상태에서 등록기준을 유지하기 위한 매몰비용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또 건설업 등록업자의 영업 범위에 대해 혼동하는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발코니 확장이나 주택 증축공사 등과 같은 소규모 공사는 건설업 등록이 필요치 않다. 즉 건설업 등록업자란 예를 들어 조달청 입찰에 참여해 수십, 수백억원의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주체를 의미한다. 당연히 기술력과 경영능력의 엄중한 검증이 요구된다.

 일부에서는 진입규제를 낮추되, 입찰단계에서 스크리닝을 강화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공공입찰을 보면, 정실(情實)주의가 상존하고 사후감사가 엄격해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공공부문 입찰 경쟁률은 평균 200:1에 이르고 있으며, 전기공사 입찰에는 무려 3000개사가 참여하는 사례도 있다. 발주기관의 의식을 고려할 때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건설업은 타 업종에 비해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다. 제조업은 대량생산과 유통을 통해 소비자의 평가가 용이하다. 그러나 건설공사는 주문생산이며, 대부분 1회성 계약으로 정보가 축적되기 어렵다.

 건설업 등록조건 가운데 자본금 규정도 허점이 많다. 건설공사 계약은 거액인 경우가 많고, 발주자가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피해도 크다. 따라서 건설업체의 경영 상태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법정 자본금의 20% 이상을 예치토록 하고, 신용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보증가능금액확인서 제도는 매우 유용하며,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건설투자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러므로 1만2000개사에 달하는 종합건설업체와 5만개사에 달하는 전문건설업체 가운데 옥석을 가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실시한 연구 결과 부채비율과 영업이익률 등으로 판단할 때 종합건설업체는 6000개사가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페이퍼컴퍼니가 진입할 수 없도록 건설업 등록 기준을 높이고, 등록 시점부터 부적격자를 걸러내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부적격 업체는 공사를 절대 수주할 수 없다는 신호(signal)를 확실하게 던짐으로써, 페이퍼컴퍼니나 부실업체의 자발적인 퇴출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