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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중소건설업체 대량 퇴출 상황을 보며

보도일자 2012-04-10

보도기관 건설경제

모든 생명체는 수명이 있다. 세포가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해 세포 복제에 한계에 이른다고 한다. 인간 세포 복제의 한계는 약 50∼60회 정도라고 한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그런데 생물학적 제약이 없는 기업에게도 수명이 있다고 한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절대적인 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 한다. 한때는 세계적인 기업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종종 보았다.

포춘지에 따르면 세계적인 우량 기업도 평균 수명이 40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평균 나이는 34년이라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100대 기업으로 명맥을 유지한 업체는 27개에 불과하다. 일본과 유럽 기업의 평균 수명은 13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평균 수명이 12.3년이라고 하니 나라마다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기업의 생존은 주로 창업 초기에 좌우된다. 대체로 창업 후 약 5년이 고비라고 한다. 창업 초기에는 경쟁업체가 많고, 틈새시장을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재 확보가 힘들어 퇴출될 위험이 크다. 그런데 창업 후 5년의 고비를 넘기면 생존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설업체의 5년 생존율은 28%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0개 업체 중에서 살아남는 것은 2∼3개 업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산업 평균 5년 생존율 35%와 비교할 때 격차가 크다. 흔히 음식·숙박업이 생존율이 낮은 대표적인 업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건설업의 생존율은 그보다 낮다. 건설업은 조사대상 19개 업종 중에서 17위로 거의 최하위권이다. 이처럼 건설업체의 생존율이 낮은 것은 산업 내부의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준비가 소홀한 업체들이 과잉기대를 갖고 무리하게 진입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건설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통상적인 수준을 훨씬 벗어나고 있다. 지난해에 실질적으로 문을 닫은 종합 건설업체 수는 2천 5백 개가 넘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영업정지 1천 6백 업체, 자진폐업 또는 등록말소 등이 947개 업체라고 한다. 영업정지의 경우, 일부 위법·불법 행위를 한 업체도 있지만, 등록기준 미달 업체가 대부분이라 현실적으로 사업 재개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퇴출 건설업체는 2009년부터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진입과 퇴출은 시장메카니즘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으나, 한 해 동안 전체 업체의 22% 이상이 퇴출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첫째, 건설투자 침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실질 건설투자 규모는 외환위기 이래 연평균 0.3% 증가에 그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소 업체들이 주로 의존하는 지자체 발주공사가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중소 건설업체의 평균 매출액은 31억원에 불과하다. 생존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건설투자가 크게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낮아지고, 정부의 예산배분에서도 SOC투자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에서는 건설투자에 대해 과도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속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둘째, 건설업체가 과다했음을 의미한다. 그간 경쟁촉진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춘 결과 지난 20년 동안 업체 수는 약 7배가 증가하였다. 그런데 신규 창업은 급증했지만 이들에 대한 시장스크린 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더욱이 적극적인 물량배분 정책은 한계기업의 퇴출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장침체 속에서 과잉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었고, 결국 시장메카니즘에 의해 스스로 해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분간은 고통스러운 과정이 지속될 것 같다.

셋째, 대량 퇴출과정에서 소중한 산업기반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퇴출압력은 시장 적응능력이 취약한 중소업체들에 집중될 수 있는데, 이 와중에서 적자수주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량한 중소업체들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준비 없는 창업으로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과 아울러 새로 창업한 업체의 합리적 경영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은 일반적으로 사회·경제 발전의 중추이며 ‘활력 있는 다수''로서 산업의 유연성이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건설업체의 99%가 중소기업이고, 또한 근로자의 55%가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 산업의 싹이자 허리이다. 일정한 수준에서 진입과 퇴출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무리한 인위적인 개입으로 뜻하지 않은 파국적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산업발전을 주도하는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소리 없이 신음하는 수많은 중소 건설업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