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과 놀이의 차이
보도일자 2013-03-22
보도기관 건설경제
‘노동’과 ‘놀이’는 어떻게 다를까? 둘 다 육체와 정신을 움직이는 인간 활동인데 우리는 직감적으로 다르다고 느낀다. 다음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자.
여기 두 무더기의 모래가 있다. 한 무더기는 공사장의 모래이다. 근로자들이 열심히 모래를 공사현장으로 나르고 있다. 다른 한 무더기는 놀이터의 모래이다.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누가 더 즐거울까? 근로자들은 모래 운반을 다 끝내고 나서 하루 일당을 받을 때 즐거울 것이다. 반면, 놀이터의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하는 내내 즐거울 것이다. 근로자들은 일하는 동안 힘들 것이나 아이들은 노는 내내 즐거울 것이므로 아이들이 더 즐거울 것이다.
노동과 놀이의 차이를 한마디로 구분하면 노동은 고통스러우나 놀이는 즐거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노동과 놀이의 본질적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저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것인 반면,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통합된 것이라고 말한다. 돈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수단으로서의 활동을 하는 노동은 언제나 힘들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곧 수단인 놀이는 그 자체로서 즐거운 것이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문화사가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질을 ‘놀이’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 불렀다. 하위징아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의미의 양면성이다. 우리가 놀이에서처럼 그 자체를 즐긴다면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현재이다. 이에 비해 노동에서처럼 미래를 위해 행동의 즐거움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 부정적인 현재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가 원하는 현재는 전자, 즉 긍정적인 현재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인기가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간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서 좋고 수많은 대중으로부터 박수를 받아서 좋고 그 결과로 돈을 벌어서 좋다. 물론 그도 무대에 서기 위해 엄청난 연습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고통의 과정 역시 즐거운 놀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늘 현재라는 시간을 즐기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삶에서 이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일이 즐겁지 않고, 일이 즐거운 예술가 같은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여기에 뾰족한 답이란 있을 수 없다. 말콤 글로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결국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인내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장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한량처럼 좋아하는 일에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건이 좋은 사람 아니면 용기와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일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세상에 감히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5년이고 10년이고 매달려 보라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년을 맞이하는 은퇴자들에게는 다르게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노후 재테크와 돈벌이다. 물론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행복한 노후를 살아가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궁핍에 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쯤에서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노동을 해 왔으니 이제는 반대로 즐거움을 위한 놀이를 하면 어떨까. 여생마저 소처럼 노동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보다 슬픈 삶이 어디 있을까.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놀이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다보면 우선 즐겁다. 덩달아 건강이 좋아지고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혹시 아는가. 이렇게 큰 욕심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큰돈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도. 지난해 대형 건설업체 임원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지인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는 지금 건설 분야의 일자리를 찾는 대신 사회적 기업 분야에서 새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 중에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길을 찾아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감히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에 나오는 너무나도 유명한 글귀다. 30여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은퇴자라면 이 말의 뜻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여기 두 무더기의 모래가 있다. 한 무더기는 공사장의 모래이다. 근로자들이 열심히 모래를 공사현장으로 나르고 있다. 다른 한 무더기는 놀이터의 모래이다.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누가 더 즐거울까? 근로자들은 모래 운반을 다 끝내고 나서 하루 일당을 받을 때 즐거울 것이다. 반면, 놀이터의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하는 내내 즐거울 것이다. 근로자들은 일하는 동안 힘들 것이나 아이들은 노는 내내 즐거울 것이므로 아이들이 더 즐거울 것이다.
노동과 놀이의 차이를 한마디로 구분하면 노동은 고통스러우나 놀이는 즐거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노동과 놀이의 본질적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저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것인 반면,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통합된 것이라고 말한다. 돈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수단으로서의 활동을 하는 노동은 언제나 힘들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곧 수단인 놀이는 그 자체로서 즐거운 것이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문화사가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질을 ‘놀이’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 불렀다. 하위징아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의미의 양면성이다. 우리가 놀이에서처럼 그 자체를 즐긴다면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현재이다. 이에 비해 노동에서처럼 미래를 위해 행동의 즐거움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 부정적인 현재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가 원하는 현재는 전자, 즉 긍정적인 현재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인기가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간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서 좋고 수많은 대중으로부터 박수를 받아서 좋고 그 결과로 돈을 벌어서 좋다. 물론 그도 무대에 서기 위해 엄청난 연습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고통의 과정 역시 즐거운 놀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늘 현재라는 시간을 즐기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삶에서 이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일이 즐겁지 않고, 일이 즐거운 예술가 같은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여기에 뾰족한 답이란 있을 수 없다. 말콤 글로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결국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인내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장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한량처럼 좋아하는 일에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건이 좋은 사람 아니면 용기와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일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세상에 감히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5년이고 10년이고 매달려 보라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년을 맞이하는 은퇴자들에게는 다르게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노후 재테크와 돈벌이다. 물론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행복한 노후를 살아가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궁핍에 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쯤에서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노동을 해 왔으니 이제는 반대로 즐거움을 위한 놀이를 하면 어떨까. 여생마저 소처럼 노동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보다 슬픈 삶이 어디 있을까.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놀이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다보면 우선 즐겁다. 덩달아 건강이 좋아지고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혹시 아는가. 이렇게 큰 욕심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큰돈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도. 지난해 대형 건설업체 임원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지인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는 지금 건설 분야의 일자리를 찾는 대신 사회적 기업 분야에서 새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 중에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길을 찾아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감히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에 나오는 너무나도 유명한 글귀다. 30여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은퇴자라면 이 말의 뜻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