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
보도일자 2013-03-29
보도기관 건설경제
얼마 전 버스를 타고 동대문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법랑 패널로 마감된 20층 정도의 건물이 나오자 앞에 앉았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그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을 내가 다 지은 거라고 옆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저 건물을 지을 때 자신이 질통을 짊어지고 20층까지 벽돌을 나르던 일, 막걸리를 마시고 철골보 위에서 토막잠을 잤던 일 등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은 내가 아는 건축사가 설계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는 그 건물을 설계하면서 밤을 지샜던 일, 외장을 설계하는데 고민했던 일 등을 들먹이면서 자기가 지은 건물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 형틀을 작업했던 목수도 누구 못지않게 자기가 지은 건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마 토공사를 했던 업체나 장비 업체도, 또 레미콘을 공급했던 업체도 자신이 했던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또, 종합건설업체도 저 건물을 내가 지었다고 할 것이고, 발주자도 인허가나 준공 과정의 고생을 떠올리며 더더욱 자신이 지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겠죠.
나는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중장기 전망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건축 허가면적, 건설 투자액, 나아가 해외 통계까지 입력하고 분석하느라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습니다. 같이 일했던 연구원은 해외 자료를 수집하고 번역하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또 다른 연구원은 자문회의를 소집하고 회의 결과를 정리하는 데 일이 많다고 투덜댔습니다. 중간 보고와 최종 보고 당시 파워포인트 작업을 했던 아르바이트생은 밤샘을 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연구를 다한 것처럼 떠벌였습니다.
당시 나는 연구책임자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을 강하게 통제했고, 발주자를 만나러 자주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는 발주자가 연구 방향을 갑자기 틀어댄다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연구 방향이 틀어지면 우리는 또 통계자료를 전부 다시 입력하고, 이를 분석하느라 철야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연구책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전망 연구를 의뢰받은 적이 있는데, 발주자의 의도를 해석하고 연구 방향을 구상하는 데 일주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전망 과정에는 수많은 외생 변수들이 있고, 심리 요인이나 과다공급 요인, 통화량 등 생각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또, 전망 방법도 시계열 모형에서부터 다중회귀 분석, 델파이(delphi) 등 다양합니다. 또, 예측 모형을 만들다 보면 다양한 더미(dummy) 변수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때마다 연구원은 나에게 달려오고, 나는 결정을 내려줘야 합니다.
용역 기간을 준수하려면 연구원들도 잘 통솔해야 합니다. 모두 내 연구에만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홀히 하면 내 연구는 제쳐놓은 채 다른 연구에 매달리게 됩니다. 연구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용역 발주처도 만만치 않습니다. 툭하면 연구 방향을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고, 전망 결과를 가져가면 추가적인 요구를 해댑니다. 이러한 것을 조정하는 데 많은 노력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진을 대신하여 모든 연구 결과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진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연구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최근 경제민주화나 상생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외부 회의에 가보면 시공 분야를 담당하는 하도급 업체는 자신이 건물을 다 지었다고 주장합니다. 타워크레인이나 파일 항타 등 장비업체는 자신이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기능인력을 통솔하는 ‘십장’(什長)들은 현장 일은 내가 다 한 것이고, 하도급업체를 포함하여 나머지는 모두 숟가락만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종합건설업체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 과중하다는 것에 대하여 하소연을 합니다.
결국 발주자의 시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발주자는 누구보다도 프로젝트의 성공이 중요하며, 부실 시공이나 공사 기간, 공사비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직접 피해를 입게되는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논의를 보면, 발주자는 배제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하도급자만을 불러 공사를 하겠다는 대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공사 책임자를 임시직으로 쓰겠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는 연구 책임자 없이 연구원만 데리고 연구를 하겠다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또, 연구 책임자를 임시직으로 쓸 경우, 과연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질지 궁금합니다.
경제민주화도 좋고 상생도 중요하지만 서로 자신의 입장만 강조하다가는 ‘제살 깎기’가 되어버리고, 결국 상생 이전에 공멸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생각납니다. 서로 내가 더 고생했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서로 상대방의 역할을 인정하고 중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말 그대로 상생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건물은 내가 아는 건축사가 설계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는 그 건물을 설계하면서 밤을 지샜던 일, 외장을 설계하는데 고민했던 일 등을 들먹이면서 자기가 지은 건물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 형틀을 작업했던 목수도 누구 못지않게 자기가 지은 건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마 토공사를 했던 업체나 장비 업체도, 또 레미콘을 공급했던 업체도 자신이 했던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또, 종합건설업체도 저 건물을 내가 지었다고 할 것이고, 발주자도 인허가나 준공 과정의 고생을 떠올리며 더더욱 자신이 지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겠죠.
나는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중장기 전망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건축 허가면적, 건설 투자액, 나아가 해외 통계까지 입력하고 분석하느라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습니다. 같이 일했던 연구원은 해외 자료를 수집하고 번역하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또 다른 연구원은 자문회의를 소집하고 회의 결과를 정리하는 데 일이 많다고 투덜댔습니다. 중간 보고와 최종 보고 당시 파워포인트 작업을 했던 아르바이트생은 밤샘을 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연구를 다한 것처럼 떠벌였습니다.
당시 나는 연구책임자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을 강하게 통제했고, 발주자를 만나러 자주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는 발주자가 연구 방향을 갑자기 틀어댄다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연구 방향이 틀어지면 우리는 또 통계자료를 전부 다시 입력하고, 이를 분석하느라 철야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연구책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전망 연구를 의뢰받은 적이 있는데, 발주자의 의도를 해석하고 연구 방향을 구상하는 데 일주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전망 과정에는 수많은 외생 변수들이 있고, 심리 요인이나 과다공급 요인, 통화량 등 생각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또, 전망 방법도 시계열 모형에서부터 다중회귀 분석, 델파이(delphi) 등 다양합니다. 또, 예측 모형을 만들다 보면 다양한 더미(dummy) 변수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때마다 연구원은 나에게 달려오고, 나는 결정을 내려줘야 합니다.
용역 기간을 준수하려면 연구원들도 잘 통솔해야 합니다. 모두 내 연구에만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홀히 하면 내 연구는 제쳐놓은 채 다른 연구에 매달리게 됩니다. 연구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용역 발주처도 만만치 않습니다. 툭하면 연구 방향을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고, 전망 결과를 가져가면 추가적인 요구를 해댑니다. 이러한 것을 조정하는 데 많은 노력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진을 대신하여 모든 연구 결과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진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연구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최근 경제민주화나 상생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외부 회의에 가보면 시공 분야를 담당하는 하도급 업체는 자신이 건물을 다 지었다고 주장합니다. 타워크레인이나 파일 항타 등 장비업체는 자신이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기능인력을 통솔하는 ‘십장’(什長)들은 현장 일은 내가 다 한 것이고, 하도급업체를 포함하여 나머지는 모두 숟가락만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종합건설업체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 과중하다는 것에 대하여 하소연을 합니다.
결국 발주자의 시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발주자는 누구보다도 프로젝트의 성공이 중요하며, 부실 시공이나 공사 기간, 공사비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직접 피해를 입게되는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논의를 보면, 발주자는 배제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하도급자만을 불러 공사를 하겠다는 대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공사 책임자를 임시직으로 쓰겠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는 연구 책임자 없이 연구원만 데리고 연구를 하겠다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또, 연구 책임자를 임시직으로 쓸 경우, 과연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질지 궁금합니다.
경제민주화도 좋고 상생도 중요하지만 서로 자신의 입장만 강조하다가는 ‘제살 깎기’가 되어버리고, 결국 상생 이전에 공멸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생각납니다. 서로 내가 더 고생했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서로 상대방의 역할을 인정하고 중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말 그대로 상생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