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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한국건설, 氣를 살려라

보도일자 2013-10-02

보도기관 건설경제

이 글은 나라 밖 출장 중에 썼다. 인터넷을 통해 건설 소식을 접하면 너무 침울하고 답답함과 억울함이 교차한다. 60명 내외 7개국 전문가들이 모여 건설산업 정책과 구조, 그리고 산업 현황을 설명하고 비교 토론하는 자리라 더욱 안타깝다. 해외건설에서 국내업체들을 제1의 경쟁상대로 삼고 있는 일본ㆍ중국의 학계와 산업계는 사정기관들이 좀더 센 칼을 기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하다. 필자를 만나 던진 첫 질문부터가 언짢다.

 한국건설을 40년 넘게 지켜본 필자로서는 현재의 국내 건설상황이 뭔가 크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불현듯 어릴 때 읽어본 소설 <장발장>의 내용이 떠오른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이나 감옥 생활을 한 도둑 장발장과 도둑을 감싼 미리엘 신부가 있다. 10계명 중 장발장은 8조를 어긴 도둑이다. 도둑을 감싸기 위해 거짓말을 한 미리엘 신부는 9조를 어긴 죄인이다. 장발장을 집요하게 추적한 자베르 형사는 빵을 훔친 죄에만 매달렸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3인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소설이라지만 빵을 훔쳤던 당시의 시대 상황은 배고픔과 정치·사회적 불안이 극심했던 때다. 자베르는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경찰로서의 사명을 다했다는 평가를 당시에는 받았을 것이다. 소설을 영화화시켜 놓은 장면을 보는 현재의 관객 대부분은 자베르 형사는 나쁘고 죄인 장발장과 신부 미리엘은 착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이는 시대적 상황 변화 때문으로 해석된다.

 우리 건설로 되돌아가 보면 죄인인 건설과 법질서 유지기관밖에 보이지 않는다. 의인 미리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된 공공 건설공사의 갑(甲)은 정부와 공공기관이다. 을(乙)은 물론 용역사와 건설사다. 의인 역할을 해야 할 법질서 유지기관과 갑은 보이지 않는다. 성당 안의 은촛대를 지나가는 사람이 집어가도록 도둑 기회를 방치한 것을 신부는 자신의 죄로 생각할 만큼 큰 의인이었다.

 공공공사에서 을은 절대 갑의 위치를 뛰어 넘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게 우리나라 제도다. 입찰자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협의를 한 게 죄라면 을에게 손실을 지우게 만든 갑의 죄는 덮고 넘어가도 되는가? 4대강 사업을 3년 안에 완공시키려고 물량을 배분하는 환경을 조성시킨 국가와 공공기관의 죄는 없는가? 사탕이 몸에 해로우니 절대 입에 대지 말라면서 사탕을 어린이 코앞에 놓고 간 어른의 잘못은 없고 몰래 먹은 어린이만 처벌하는 게 올바른 형평성인가?

 국가의 법질서 유지기관들이야 당시 상황보다 지금의 현실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사태가 반드시 옳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건설은 현재 안으로는 일감 부족과 수익성 악화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1년 농사로 이자 갚을 능력도 못 되는 게 우리나라 건설이다. 해외건설 시장에서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로운 일감 확보를 위해 선진국 기업은 물론 중국과 터키 등 신흥국 기업들과 피 말리는 수주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이들 경쟁 기업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호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한국건설의 지금 상황이 좀더 길게, 그리고 더 강하게 악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한국건설의 기를 죽이는 것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기를 꺾어 놓은 다음 죽이진 못하고 다시 기를 살리는 어떠한 당근이나 국가의 비전도 보여주지 않는다. 잘못된 과거는 청산되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과거 청산이 기업을 죽이고 가족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청산 방법과 과정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의 아쉬운 대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얼굴 관상만 보았지 당시 시대 상황은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섞인 대사로, “파도만 봤지 파도를 일으킨 바람은 보지 못했다”는 대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한국건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2년 전 어느 국내 매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의 87.5%가 사회적 투명성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관습으로 부패산업이라는 낙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하는 것은 을의 책임이 분명하다. 과거 잘못에 대한 변명보다 솔직한 고백과 함께 반성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책임도 있다.

 180만명에 달하는 건설산업 종사자와 그에 딸린 식솔들을 생각한다면 징벌적 처벌 일색보다는 미래 기대와 희망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먼저 내놓는 게 정부의 책임이다. 모자라는 청년층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건설 CEO들이 세계 영토에서 일감 확보 전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국가의 전술적 전략도 당장 필요한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