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냉정과 열정 사이
보도일자 2014-08-29
보도기관 이데일리
얼마 전 이탈리아 피렌체를 방문했다. 미리 읽고 간 댄 브라운의 추리소설 ‘인페르노’를 머리에 그리며 시내의 미로를 둘러보니 르네상스의 유적들이 한층 더 인상 깊었다. 저녁나절에는 역시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 연애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며 하루의 감상을 정리했다.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추리물보다는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분위기에 더 잘 맞았다. 밀당이 있는 쿨한 사랑이 역시 멋있는 듯하다.
비단 연애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20년 넘게 건설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니 분야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산업의 영욕을 같이 느끼게 된다.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200만호가 건설됐을 때, 생활권을 가능케 한 고속철도 사업으로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해졌을 때, 중동에서 세계 최고층 빌딩을 완공했을 때는 건설인의 한 사람으로 함께 자부심을 누렸다.
반면 건설산업이 담합과 부실시공으로 비난을 받을 때는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건설에 관한 연구를 하다보니 단순한 월급쟁이 이상의 열정을 갖게 된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산업에 매몰된 입장에서는 올바른 연구를 할 수가 없다. 공정한 입장에서 냉정한 해법을 제시해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산업에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도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때 어느 한쪽을 따를 수 있는 객관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직장을 대함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이 적용될 수 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지만, 조직 논리에 빠져 더 큰 구도를 그르치면 조직에도 개인에도 불행이 닥칠 수 있다. 또 조직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노력의 대가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될 때 그 서운함으로 인해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지나친 열정이 독이 될 수 있듯이, 반대로 냉정에 치우치게 되면 업무를 오로지 수단으로만 대하게 되며 건성건성 처리하게 돼 조직에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조직을 위하는 열정과 삼자적인 관점의 냉정을 경우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야 성공적인 조직생활을 할 수 있다.
남녀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료, 직원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쿨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뜻하는 고사성어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표현이 있다. 외국 속담에서는 너무 가까워지면 경멸감이 생길 수 있고, 멀리서 볼 때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한다. 공적인 관계에서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편해지면 필요 이상의 말을 하게 되고 지나가는 사담이나 술자리의 농담이 상처를 주게 되며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역으로 지나친 거리감과 깔끔함은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져 동료로서의 친근함은 말할 것도 없고 업무상의 협조 관계도 형성하기 어렵게 된다. 친한 관계가 원수로 바뀔 수 있으며, 냉정함은 직장 내 왕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역시 사회적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열정이 시들고 냉정의 몫이 커지니 내 안의 합리화를 위해 하는 식은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약해지니 상처받기 싫어서 또 서운하지 않기 위해서 방어막을 두껍게 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다보니 자기 일을 위해, 조직을 위해, 사람 관계를 위해 쿨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다시 느낀다. 사회적인 갈등이나 국가적인 재난에 대비하고 대처함에 있어서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접근이 올바른 해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단 연애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20년 넘게 건설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니 분야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산업의 영욕을 같이 느끼게 된다.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200만호가 건설됐을 때, 생활권을 가능케 한 고속철도 사업으로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해졌을 때, 중동에서 세계 최고층 빌딩을 완공했을 때는 건설인의 한 사람으로 함께 자부심을 누렸다.
반면 건설산업이 담합과 부실시공으로 비난을 받을 때는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건설에 관한 연구를 하다보니 단순한 월급쟁이 이상의 열정을 갖게 된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산업에 매몰된 입장에서는 올바른 연구를 할 수가 없다. 공정한 입장에서 냉정한 해법을 제시해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산업에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도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때 어느 한쪽을 따를 수 있는 객관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직장을 대함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이 적용될 수 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지만, 조직 논리에 빠져 더 큰 구도를 그르치면 조직에도 개인에도 불행이 닥칠 수 있다. 또 조직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노력의 대가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될 때 그 서운함으로 인해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지나친 열정이 독이 될 수 있듯이, 반대로 냉정에 치우치게 되면 업무를 오로지 수단으로만 대하게 되며 건성건성 처리하게 돼 조직에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조직을 위하는 열정과 삼자적인 관점의 냉정을 경우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야 성공적인 조직생활을 할 수 있다.
남녀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료, 직원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쿨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뜻하는 고사성어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표현이 있다. 외국 속담에서는 너무 가까워지면 경멸감이 생길 수 있고, 멀리서 볼 때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한다. 공적인 관계에서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편해지면 필요 이상의 말을 하게 되고 지나가는 사담이나 술자리의 농담이 상처를 주게 되며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역으로 지나친 거리감과 깔끔함은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져 동료로서의 친근함은 말할 것도 없고 업무상의 협조 관계도 형성하기 어렵게 된다. 친한 관계가 원수로 바뀔 수 있으며, 냉정함은 직장 내 왕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역시 사회적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열정이 시들고 냉정의 몫이 커지니 내 안의 합리화를 위해 하는 식은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약해지니 상처받기 싫어서 또 서운하지 않기 위해서 방어막을 두껍게 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다보니 자기 일을 위해, 조직을 위해, 사람 관계를 위해 쿨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다시 느낀다. 사회적인 갈등이나 국가적인 재난에 대비하고 대처함에 있어서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접근이 올바른 해법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