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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노후 인프라가 국민안전 위협…투자 확대 지원法 만들어야

보도일자 2017-02-07

보도기관 건설경제

민간연구소에서 건설정책 업무를 12년간 담당했다. 또래보다 선임연구원도 빨리 달고 이른바 ‘잘나갔다’. 하지만 그가 낸 보고서에 대해 일부 기업인들은 ‘필드를 모른다’며 얕잡아봤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대형건설사 산하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중앙아시아 진출에 도전할 때 ‘사업성이 없다’며 반대의견을 내 관철시켰다. 주택사업이 정점을 찍었을 때도 민첩하게 위기신호를 감지했다. 전년 대비 10% 밑으로 주택공급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주택사업본부는 팔짝 뛰었지만 결국 그의 판단이 옳았다. 물론 예측 실패도 많았지만 ‘적중률 70∼80%’로 자평할만큼 경영에 보탬이 됐다. 오랜 기간 회사 경영에 자문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기업 경영의 꿈을 키웠다. 실제로 10년 뒤엔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데뷔했다. 그리고 2년 뒤 첫 직장이던 민간연구소 원장으로 복귀했다.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상호 원장(53) 이야기다.

이 원장은 평소 언론사 기고문은 물론이고 인터뷰까지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한다. 건설산업 70주년이자, 조기 대선으로 정치적 격변기가 예상되는 시기에 건설산업의 향배를 물을 적임자다.

이 원장은 노후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한 제도 마련을 첫 손에 꼽았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 노후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한 조례 제정 사례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노후 인프라 투자를 지원할 근거법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축기조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맞설 것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SOC 스톡(자산)이 충분하다거나 OECD 평균 이상이라는 재정당국의 주장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등 이미 최상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국가들이 여전히 인프라 투자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건설시장 공략을 위해선 국내 건설제도의 글로벌화와 함께 사업수행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최근 해외건설의 부진과 수익성 악화는 저가 수주보다는 수행능력을 초과한 ‘과잉수주’에 원인이 있다”며 “설계-시공-운영ㆍ유지관리 간 칸막이를 걷어내고 M&A와 현지화로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2일 주최한 ‘트럼프 시대의 미주 인프라 투자’ 국제컨퍼런스에 대해선 “국내외 최고의 로펌과 공동으로 국제컨퍼런스를 추진한 건설업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며 “트럼프 정부의 인프라 정책방향과 시장진입 전략을 논의해 건설업계의 호응이 뜨거웠다”고 평가했다.

-한국건설산업이 태동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도전과 기회, 위기 요인은.

“국내외 건설시장을 확장하고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ㆍ제도 혁신과 우수 인재의 영입ㆍ양성이 중요하다. 노후 인프라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확대 가능성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스마트시티, 스마트인프라 구축, 전세계적인 인프라 투자 확대 붐은 기회요인이다. 다만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의 쇠락과 우수 인력의 유입 축소 및 고령화, 융복합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인 과도한 규제의 존속,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국내 정치의 혼란 등은 위기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건설산업은 ‘저성장의 덫’에 빠진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올해는 어떨까.

“전세계적으로 건설산업은 실업방지와 경기부양을 위한 핵심적인 내수산업이고, 최근 들어 각 국마다 재정투자 확대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IMF(외환위기) 때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건설산업이 경제의 경착륙을 막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고 작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작년까지 2∼3년간 호황을 지속해 온 주택경기는 올해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신 그 동안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토목 등 SOC 투자 확대를 통해 국내경제의 저성장 탈피, 내수경기 부양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한 공공건설투자 확대와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한 입찰제도 개선, 규제개혁을 통한 건설산업 구조의 혁신에 연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연구결과의 정책반영을 위한 정책네트워크 구축도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매년 SOC 예산을 6% 이상 줄인다는 방침이다. SOC 분야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위한 방안은.

“SOC 투자의 점진적 축소를 정당해 온 ‘SOC 스톡이 충분하다, OECD 평균 이상이다’는 주장부터 재점검해봐야 한다. 인프라 수준이 충분하다는 기준이 뭔가.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등 이미 최상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나라들이 여전히 인프라 투자를 하는 이유는 뭔지도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도로 몇 ㎞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출근시간에 10명 중 8명은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10분 내에 도착한다’는 식으로 사람 중심의 인프라 투자목표를 내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과연 SOC가 충분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인프라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해야 한다는 인식 확산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연구원은 오는 15일 ‘확장적 재정정책과 SOC투자 확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경기가 나쁠수록 지역 중소건설사의 어려움이 더 커진다.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할 일은.

“정부는 공동도급제처럼 실효성 없는 기존의 지역중소건설업체 보호육성 정책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대신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업계는 환경변화에 따른 사업 다각화와 전문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노후화된 인프라 문제는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위험요소다. 반면 투자는 부진한데.

“서울시 노후 인프라 투자확대를 위한 조례 제정 사례를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다. 또 국회 차원의 노후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한 입법 지원작업을 통해 차기 정부의 핵심정책과제로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신규 인프라 발굴과 함께 4차 산업혁명과 연관해 스마트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연구원에 ‘스마트 인프라 TF’를 발족해 연내 노후 및 신규 인프라를 포함한 투자확대 연구를 추진하겠다.”

-확정가격 최상설계, 순수내역 입찰제, 시공책임형 CM(CM at risk), 국제기준 적용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입낙찰제도가 시범사업 중이다. 국내 입낙찰제도 어떻게 바꿔야 하나.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해 둔다면 입낙찰제도의 글로벌 스탠다드 도입이 필요하다. 설계-시공-운영 및 유지관리 간의 칸막이를 제거해야 한다. 건설사가 엔지니어링 역량을 갖춰야 수행이 가능한 입낙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가격 중심 낙찰제도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한정된 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투자사업을 적극 육성하려고 한다. 하지만 민간은 시쿤둥한데.

“수익성이 없는 민간투자사압을 하라고 하니 구조적으로 잘 될 수가 없다. 민간투자의 본 뜻인 민간의 창의성을 활용하되 안정적인 수익성 제공방안을 찾아야 한다.”

-해외건설시장이 고전하고 있다. 원인과 해법은.

“본질적으로 글로벌 경쟁력 부족이다. 특히 시공 이외 부문의 역량이 취약하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내부의 사업관리역량과 엔지니어링 역량 배양, M&A와 현지화를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미래 건설산업을 이끌 신성장동력 발굴이 절실하다. 국토교통부는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 드론 등 7대 신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민간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

“드론, 3D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건설산업이 선도하려면 전방위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시범사업도 폭넓게 하고 민간에 기획단계부터 기회를 줘야 한다. 건설사들이 신사업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규모도 더 키워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