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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주 52시간 근무제, 준비됐나

보도일자 2018-06-11

보도기관 건설경제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2020년 1월에는 50인 이상, 2021년 7월에는 5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기업으로 확대된다. 올해부터 3년내에 최대 법정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무려 16시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주당 기준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4시간 단축하는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7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이번 근로시간 단축 조치는 너무 급박하다. 일본은 8년간에 걸쳐 4시간, 프랑스는 16년간에 걸쳐 4시간, 독일은 29년간에 걸쳐 5시간을 단축했다는 외국 사례에 비추어 봐도 이번 조치는 너무나 급박하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의 준비가 충분한 지를 묻고 싶다. 시행시기가 임박했어도 쟁점이 되고 있는 많은 사안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시 건설산업의 특성을 반영하고, 공사비 상승분을 보전하는 과제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건설산업은 수주산업이다. 수주 시점에서 계약을 통해 사실상 수익구조가 확정되는데, 시설물의 완성 이전에 근로시간 단축과 같이 사업자 귀책사유가 아닌 변동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계약변경을 통한 공사비 보전이 필요하다. 장기간이 소요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는 그 필요성이 더욱 크다. 또한 건설업체들은 프로젝트 단위로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날씨나 계절적 요인에 따른 근로시간의 편차도 크다. 탄력 근무제가 필요한 것이다. 한 개의 공사현장에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이 협력하여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기업의 상시 근로자 수가 아니라 현장규모를 기준으로 근로시간 단축 대상을 정할 필요도 있다. 해외현장에서는 현지국 및 제3국 인력과 함께 작업을 수행해야 하고, 국내 근로기준법 개정을 이유로 해외발주처와의 계약을 변경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공사에 대해서는 폭넓은 예외가 인정되어야 한다. 과거에도 이같은 건설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준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근로기준법 부칙에 특례규정을 신설하여 건설공사,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 소방시설공사, 문화재수리공사는 ‘총공사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개정 근로시간 적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동일 건설현장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일치시키는 공사규모별 적용기준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이때 적용대상도 법 시행 후 최초로 계약되는 신규공사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설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예외 규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게 되면 공사비 상승이 불가피하다. 최근 건산연에서는 37개 공사 현장의 원가계산서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공사비 상승효과를 분석해 보았다. 근로자의 기존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직접노무비는 평균 8.9%, 간접노무비는 평균 12.3%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따라 총공사비는 평균 4.3% 가량 상승할 전망이다. 하지만 경영상태가 열악한 건설업체들이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임금을 계속 유지할 것 같지 않다. 일부 신규인력의 충원이 있더라도 기존 근로자의 임금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능인력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리직의 근로시간이 더 길다. 만약 기존 임금을 유지한 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한다면, 기능인력보다 관리직 임금이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장관리자가 많은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는 현장관리자의 추가 고용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건설업체의 인건비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기계화 시공물량이 많은 토목공사에 비해 인력투입이 많은 건축공사는 공사비 상승분이 더 클 수 있다. 대부분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턴키방식으로 수행되는 해외플랜트 공사나 단기간에 돌관작업을 통해 준공해야 하는 반도체공장 등 첨단시설공사에도 엄격하게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한다면 공사비는 더욱 크게 상승할 것이다.

7월 이후 발주되는 신규공사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적정 공기와 공사비 산정기준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미 계약이 체결되어 공사가 진행중인 현장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공공이건 민간이건 간에 기존 공사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기존의 공공공사에 한해서라도 굳이 7월부터 적용하겠다면 국가계약법령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항목을 마련하여 공사비 상승분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국내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해외공사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최저 임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KDI 조차 향후 급속한 인상이 계속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단계적 도입도 철저한 보완책을 준비해 가면서 속도조절과 함께 건설산업의 특성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설현장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의 성공적인 정착과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