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언론기고

경쟁정책으로 전환해야

보도일자 2002-11-29

보도기관 제일경제

`건설업법''이 제정된 50년대 말부터 오랫동안 건설정책의 핵심은 면허정책이었다. 시장규모가 작은데다 시공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건설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던 시기에는 높은 면허기준을 설정하여 업체를 `엄선''할 필요가 있었다. 건설업체의 기술력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면허업종간의 겸업제한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다. 충분한 자본금과 기술인력을 보유한 건설업체들이 특정 업종의 시장에 진입한 후, 다른 업종은 쳐다보지 않고 한 우물만 파도록 해야 기술력이나 전문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그런데 90년대 초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결정적인 사건은 정부조달협정(GPA) 타결에 따른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국내 건설시장의 개방이었다. 건설시장 개방을 앞둔 시점에서 면허제도를 통한 높은 시장진입 장벽은 외국으로부터 무역분쟁에 휘말리기 딱 좋은 사안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면허장벽이 무너지면서 건설업체 수는 급증하였다. 예컨대 1차 면허개방이 이뤄진 88년에 468개사에 불과했던 일반건설업체 수는 IMF사태를 맞이한 97년에 3천896개사로 증가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1만2천500여개사에 달한다. 이렇게 증가한 건설업체중 상당수는 시공능력은커녕 완화된 등록기준조차 갖추지 못했거나 아예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등록기준의 보유여부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그리고 등록기준의 상향조정을 통해 부실업체를 시장에서 퇴출하는 작업을 지난 2년간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건설업체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정책의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면허정책이 실효성을 거두자면 등록기준을 대폭 상향조정해야 하는데, 이제는 등록기준을 과거만큼 높이기도 어렵다.

외국업체의 문제 제기는 논외로 하더라도 등록기준을 높이자면 일차적으로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부터 통과해야 한다. 이미 등록한 신규업체들에 또다시 높아진 등록기준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기껏해야 폐지된 건설공제조합 출자의무제도를 보증가능금액 확인제도로 대체하고 사무실을 몇평 이상 보유해야 하며, 기술자를 1명 더 고용해야 한다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다. 부실업체 실태조사를 통한 퇴출작업도 정부와 페이퍼 컴퍼니간의 숨바꼭질만 반복되는 악순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등록기준의 강화를 통해 업체 수를 줄여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건설시장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다. 해마다 ENR지에서 발표하는 세계 225대 건설업체 가운데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10여개나 포함되고 있다.

국내 건설시장은 97년부터 외국업체에 개방되었다. 면허개방으로 인하여 일반건설업체 수만 해도 이미 1만2천500여개사로 급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면허개방을 했던 88년부터 면허받은 업체의 보호육성이 아니라, 시장에 진입한 업체간의 공정한 경쟁(fair competition) 촉진을 통해 건설산업의 질적인 발전을 유도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보증제도와 입찰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건설보증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입찰제도 또한 건설업계 내부의 이해상충으로 요행에 의한 복권당첨식 낙찰제도나 덤핑수주가 불가피한 최저가 낙찰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건설산업은 적어도 공공부문의 경우, 기술경쟁과 가격경쟁이 실종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겨우 낙찰률이나 조금씩 올려 주는데 그쳤다. 페이퍼 컴퍼니가 창궐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요행에 의한 복권당첨식 낙찰구조에서 낙찰확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경제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 건설산업은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건설수주 금액은 금년부터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수준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계속 건설산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세계적인 건설대국(建設大國)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경쟁정책(Competition Policy)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등록기준의 상향조정과 같은 면허정책은 일시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면허업종간의 겸업제한과 같은 경쟁제한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시공업만 할 것인지, 설계업과 시공업을 같이 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는 정부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이처럼 면허정책에서 경쟁정책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할 경우, 관련 정부 부처의 조직과 기능도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