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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입찰브로커 두고만 볼 것인가

보도일자 2003-01-17

보도기관 한국건설신문

건설업계에 공사수주만 했지 시공은 하지 않는 ‘입찰브로커’가 창궐하고 있다는 것은 건설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부실건설업체 실태조사를 통해 시장퇴출을 시키겠다고 나섰겠는가?

실제로 건설교통부의 부실건설업체 실태조사 결과 등록기준 미달이나 관계규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 수는 2000년 4천95개사, 2001년에는 4천462개사였고, 지난 2002년에는 6천867개사로 늘어났다. 이같은 수치를 놓고 정부는 “지속적인 부실업체의 적발 및 퇴출조치를 통해 건설업체의 난립 및 수주질서 문란을 완화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2년 간에 걸친 정부의 부실업체 퇴출작전에도 불구하고 2002년에는 적발된 부실업체 수가 급증하였기 때문에 입찰브로커가 갈수록 더 창궐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하고 싶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전자조달제도가 확산되면서 무자격 부실건설업체의 입찰을 대행해 주는 ‘입찰브로커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회사도 성업중이라고 한다.

하기야 입찰수수료도 내지 않겠다, 입찰보러 발주기관에 가야 할 필요도 없겠다, 50억원 미만 공사는 내역서를 제출할 필요도 없겠다, 그저 사무실 한켠이나 PC방에서 전산작업하여 마우스나 꾹꾹 눌러 입찰보면 되고, 운이 좋아 낙찰되면 일괄하도급으로 처리하면 되는 마당에 그런 ‘입찰브로커의 브로커’가 활개를 치는 것도 당연지사다.

공사를 수주한 업체가 시공은 하지 않고 ‘부금’만 떼어먹고 손을 턴다면, 공사품질은 제대로 확보될 리 없다.

또 입찰브로커가 창궐하면 할수록, 시공능력이 있는 건실한 업체의 수주기반은 잠식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현실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충분한 시공능력을 갖춘 건실한 업체도 위장계열사를 여러개 설립하여 입찰브로커 대열에 나설 채비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남들도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위장계열사를 여러개 설립해 봤자 남들도 꼭같이 따라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낙찰기회는 그 이전이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낙찰확률은 더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장계열사를 더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같은 메카니즘이 계속 악순환을 그리다 보니 건설업체 수는 몇 년전부터 해마다, 매월마다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왜 입찰브로커가 창궐하고 있는가도 대부분의 건설인들이 알고 있다. 등록기준이 너무 완화된 데가, 낙찰율이 보장된 복권당첨식 입찰제도가 근본원인이다. 그렇다면 등록기준을 대폭 높일 수 있겠는가? 이미 낮은 등록기준하에 건설시장에 진입한 업체 수가 수만개를 넘어선 마당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 시장에 진입한 수만개의 신규 건설업체들에게 대폭 강화된 등록기준을 갖추라고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조달협정이나 DDA니 하는 국제협약 때문에도 어렵다.

소규모 공사에 최저가 낙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저가 낙찰제에서는 paper company를 여러개 만들 필요가 없다. 입찰가격의 결정은 최고경영자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가격경쟁력이 없는 업체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최저가 낙찰제에서는 공동도급사임에도 불구하고 시공참여없이 ‘부금’만 떼어먹는 입찰브로커도 사라질 것이다. 소규모 공사는 대규모 복합공종공사 보다 품질확보가 용이하고, 설사 부실공사가 발생하더라도 발주자가 부담해야 할 리스크는 크지 않다.

저가낙찰공사일수록 감리·감독과 관계기관의 감사활동은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지나친 저가낙찰로 중소건설업계가 공멸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복권당첨식 입찰제도는 중소건설업체를 보호하는데 무슨 기여를 하고 있는가? 어쩌다 한건 수주했을 때, 그 순간 기쁨을 줄 수는 있겠지만, 입찰브로커의 창궐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망하는데 기여를 할 것이다.

입찰브로커가 수주한 뒤, 부금 떼고 뭐 떼고 하는 바람에 실제 시공하는 하도급자나 시공참여자들이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공사를 하고 있다고 치자. 차라리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여 실제 시공할 그 사람들이 그 가격에 원도급자로서 낙찰받게 하는 편이 건설산업의 발전이나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국가 전반적인 혁신운동이 추진될 것이다. 이것저것 백화점식으로 보기좋게 진열하는 것보다, 아예 건설산업에서 ‘입찰브로커’가 발을 못붙이도록 하는 일 한가지만 해도 새 정부의 건설정책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입찰브로커의 창궐은 더 두고 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