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언론기고

건설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보도일자 2001-08-31

보도기관 financial

최저가낙찰제가 1,0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도입되면서 건설업계가 시끄럽다. 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건설물량이 줄어들어 그렇지 않아도 업계가 어려운데 설상가상으로 가격경쟁이 심화되면서 대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저가투찰에 대한 손가락질이 오가고 있지만 현 상황은 일감이 없어 죽느냐 또는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저가에라도 공사를 확보하여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내에서도 말이 많다. 산업을 담당하는 부처는 건설산업의 생산기반이 무너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며, 부실시공의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다. 반면 예산을 담당하는 부처는 국민의 세금을 알뜰하게 써야 한다는 명분과 현실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이 보증거부율, 신인도 감점 등의 보완책으로 표출되었으나 저가투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최저가낙찰제를 정착시켜 보려는 정부의 노력이 시민단체로부터 원칙없는 행정이라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책 당국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국민과 업계의 원성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대증처방을 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저가낙찰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에 공사를 주겠다는 이론적인 당위성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순수한 형태의 최저가낙찰제가 시행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현명한 소비자는 품질과 가격을 종합하여 가치를 판단하지 가격만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1,000억원 이상의 대형지출에서는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큰 건설공사일수록 품질을 중시하며 낙찰자를 선정해야지만 실수가 없다. 입찰서의 기술제안이 타당한지, 과거의 실적은 충분한지, 계약이행을 위한 재정적 기초는 탄탄한지 등을 평가하여 낙찰자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가격경쟁은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업체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제도는 절차적 투명성과 형식적인 형평성을 중시한 나머지 완벽한 계량적 평가와 그마저도 많은 업체가 만점을 받는 변별력이 약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식과 같은 절차를 거쳐 낙찰자가 선정되는 것이다.

적정한 업체를 제값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발주자가 자신있게 주관적 평가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연필 한자루 사는 것과 집 한채 사는 방법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주관적 평가의 불가피성도 인정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반발, 거절할 수 없는 로비압력, 감사원 감사 등의 이유로 책임있는 발주자의 업체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단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어쨌거나 ''고양이 목에 방울''다는 역할이 민간부문으로 넘겨졌다.

최저가낙찰방식이 입찰에 적용되면서 이행보증제도가 함께 도입되었다. 발주자가 계약금액의 40%에 해당하는 공사이행보증을 요구하게 되면 보증기관이 보증서 발급시에 업체와 입찰가격에 대해 신중하게 평가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보증기관은 미지의 환경에서 업체평가라는 뜨거운 감자를 떠 안기보다는 담보를 확보하여 보증위험을 대폭 낮추는 방법을 택하였다.

저가투찰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담보를 요구하게 되었으나 업체들이 현금담보 제공에 따른 예대금리차를 부담할 각오로 저가투찰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낮은 가격에 낙찰될수록 이행보증에 따른 담보부담을 줄이게 되는 모순을 야기하고 있다. 보증거부율이 없어지고 난 이후에는 예정가격의 60%대 낙찰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보증기관이 저가심의를 해야한다고 하지만 보증위험이 완벽하게 담보되어 있는 상황에서 보증기관이 나설지는 의문이다.

공은 한바퀴 돌았다. 현재 나와있는 방안들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건설산업도 죽고 국민도 손해본다. 아직도 정부는 보증시장을 개방하고 보증위험을 현실화하여 보증기관의 심사기능을 정착시키겠다고 하고 민간에서는 발주자의 역할을 보증기관이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혹시 양자가 함께 나서 정부는 책임있는 발주자의 역할을 다하고 보증기관은 위험을 보증하는 대가로 정당한 영업을 한다면 고양이 목에 종을 다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