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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사상누각' 정책 안 되려면

보도일자 2019-05-14

보도기관 이데일리

편견이나 오해는 개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으면 별 문제가 안 된다. 밖으로 표출되는 순간부터가 문제다. 특히 광범위한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은 편견이나 오해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정작 우리 현실에서는 종종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보게 된다. ‘상위 1% 대 나머지 99%’, ‘극소수 대기업과 절대다수 중소기업’ 같은 양극화 주장이 그런 사례다.

최근 OECD에서 ‘한눈에 보는 사회(Society at a Glance 2019)’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OECD 회원국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지표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중위소득(2만 3362달러, 2016년)과 중위소득의 75∼200% 소득을 가진 중위계층의 비중(61%, 2014년)은 OECD 평균(각각 2만 3042달러, 61%) 수준이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S90·S10(상위 10% 평균소득을 하위 1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도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각각 0.295 및 9.0이었는데, OECD 평균은 각각 0.315 및 9.3이었다. 이들 계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사실만 보면 우리나라를 OECD 국가 중에서 양극화가 심한 나라로 평가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가 개선해야 할 과제도 많다. 상대적 빈곤율, 노인빈곤율, 청년층 취업난, 자살률, 출산율 등은 OECD 평균보다 못하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입각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양극화에 대한 인식은 산업 정책에도 반영된다. 극소수 대기업이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규제를 통해 억제해야 하고, 중소기업 중심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산업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견기업도 있고, 중소기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소기업도 있고 스타트업도 있다. 기업 규모도 여러 단계의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또 다양한 규모의 기업들은 사업영역이나 기업활동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도 아니다. 생태계를 형성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이같은 사실을 간과한 정책들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에 대한 규제 결과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다.

건설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형 건설업체는 공동도급이나 하도급을 통해 지역 중소건설업체 및 전문건설업체와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대형 건설업체 한 개가 도산하면 협력관계에 있는 수백개가 넘는 중소건설업체들도 함께 어려워진다. 또 지금처럼 공공공사의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경우 함께 공동도급한 중소건설업체는 손실분담으로 인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업체는 대기업이고 하도급자인 전문건설업체는 중소기업이라는 전제에서 하도급 규제만 강화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종합건설업체도 98%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전문건설업체도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꽤 있다. 건설시장 내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지금의 하도급 규제는 지나치게 과다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하다.

부동산시장에서도 양극화라는 용어가 무비판적으로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주택시장의 양극화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수도권 주택시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고, 지방주택시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 부동산시장은 양극화가 아니라 지역별·상품별 ‘차별화’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두 가지 극단을 상정하고 중간은 없거나 양극화돼 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극소수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있지만, 과반수 이상은 중산층이다. 기업도 초대형부터 중견, 중소, 스타트업 등 다양한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양극화 프레임’에 갇혀 있다. 대표성 없는 양극단의 사례를 예로 들고, 이들이 마치 분리돼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 사실은 다르다. 개인 소득이건 기업 규모건 간에 연속 선상에서 다양한 구분이 가능하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나 혁신성장도 사실에 기반한 정책의 뒷받침이 있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