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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건설현장에 필요한 안전시스템

보도일자 2019-07-19

보도기관 이데일리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돼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시스템 안에 있는 구성요소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원래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은 늘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으로 개별 구성요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특성이 생겨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을 전체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부분만 봐서는 전체를 알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시스템적 사고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시스템의 일부만 따로 떼어서 보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구성요소는 다른 구성요소와 무관한 것으로 가정하거나, 구성요소 간의 변화를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변화 유도를 위해 시행했던 정책이나 제도가 기대했던 성과를 창출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를 좀 더 폭넓은 시스템적 사고에 입각해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소득주도 성장론을 보자. 근로자의 소득 향상이 소비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기업의 투자 증가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을 높이면서 다시 근로자의 소득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식의 단선적인 인과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현실은 의도했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고, 소득계층 간의 격차는 더 확대됐으며, 기업의 설비투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일자리 사정도 더 어려워졌다. 아직은 시행 초기이니 기다리면 저절로 성과가 날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경제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이제는 수많은 경제변수들의 상호작용을 충분히 감안한 시스템적 사고에 입각하여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건설정책도 마찬가지다. 작년 한 해 동안 건설현장 사망자 수는 485명으로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수의 절반을 차지했다. 우리 정부는 연내에 사망자 수를 100명 이상 줄이기로 하고 여러 가지 안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입법대책의 상당수는 원도급자 책임을 강화하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겠다고 한다. 현장근로자나 하도급자만이 아니라 원도급자도 안전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건설현장 참여자 간의 역할과 책임 배분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건설현장의 안전을 위한 공공발주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도 여전히 부족하다.

  안전사고의 원인에 관한 이론으로 ‘시스템 모델’이 있다. 이것은 안전사고의 원인을 전체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한다. 안전사고는 시스템 구성요소 간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단편적인 사고원인의 발견과 제거보다 전체 시스템의 문제를 파악하고 보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시스템 모델에 기초해 건설안전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한 나라가 영국이라고 본다. 작년 한 해 동안 영국 건설현장의 사망자 수는 38명이었고, 재작년에는 31명이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 사망자 수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과가 나왔을까? 영국은 건설현장 사고의 약 70%가 착공 전의 계획 및 경영관리에 기인했다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사고원인을 제공하는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하도급자, 현장근로자 등의 역할과 책임을 정립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1994년에 제정된 ‘건설공사 설계 및 관리에 대한 규제(CDM)’가 바로 그것이다. 이 법령은 2007년과 2015년에 걸쳐 두 차례 개정되면서 꾸준히 시행됐다. 영국의 건설현장 안전이 획기적으로 강화된 배경으로 이 법령의 제정과 시행을 꼽고 있다. 이같은 영국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많다. 특히 시스템적 사고에 입각해 원도급자만이 아니라 발주자, 설계자, 하도급자 및 현장근로자 등 건설현장 참여자 모두의 역할과 책임을 제고했던 것이 건설현장 안전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초연결 시대를 살고 있다. 초연결 시대에는 시스템 구성요소 간의 연결과 의존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면서 불안정성도 증폭된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일수록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사고를 탈피해 시스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