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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판교 저밀도 전원도시로 .......

보도일자 2001-06-19

보도기관 조선일보

서울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만나는 판교 일대의 짙은 녹음이 싱그럽다. 서울 주변에 아직 이 정도의 녹지가 남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이곳에 신도시가 세워진다. 아쉽다.

누구나 보존을 바라는 녹지를 개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토지제도가 헐거워진 탓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린벨트를 풀고, 토지 공개념이 무너지면서 여기저기 난개발을 부채질하여 왔다. 당초 수도 서울의 남단녹지였던 판교지역도 성남시의 성화로 개발예정지구가 되었다. 이제 난개발을 방치할 것이냐, 계획적으로 개발할 것이냐의 기로에 있으므로 신도시 개발은 최선이라기보다 차선이라 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 주변을 돌아보자. 고층아파트, 공장, 밥집, 모텔, 창고들이 길가에, 논두럭 사이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이같은 난장판 난개발에 우리의 행정은 속수무책이다. 주택보급률이 94%에 이르렀다는 허황된 수치에 현혹되어 분당 등 신도시 이후 공공부문에서 택지공급이 거의 스톱되어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계산에 의하면 아직도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60%밖에 안 된다. 민간업자들의 난개발을 탓할 일이 아니다. 도시계획을 세우고 택지를 공급해 주지 못한 정부 탓이다.

기왕 판교에 신도시를 만든다면 지금까지의 난개발 방치 행정이 계획개발 행정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신도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분당과 일산을 건설할 당시의, 그리고 건설한 후의 많은 부작용을 거론한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볼 때 이들 신도시가 도시설계적 수준이 미흡했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주택공급, 서울의 인구분산, 교통분산 측면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판단된다.

최근 발표된 판교개발계획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저밀도 자족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주택단지는 고밀도 고층 일변도였다. 땅값이 비쌌던 것이다. 덕분에 서울 주변 주택단지는 가까운 일본 동경보다도 서너 배 밀도가 더 높다. 욕심을 부린다면 발표된 계획보다 훨씬 더 밀도를 낮췄으면 한다.

신도시 주변을 녹지로 묶어 개발을 억제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개발이 이루어지면 으레 주변지역에는 ‘어디 어디에서 몇 분 거리…’식의 ‘이웃에 기대 덕보기 개발’이 횡행한다. 분당과 일산 주변 난개발을 보라.

그동안 건설된 신도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일 뿐 자족기능이 부족하였다. 이제부터라도 아무리 작은 단지라도 ‘도시’를 만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판교에는 연구소나 벤처단지를 유치한다고 하는데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교통시설 확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과도한 개발이익을 추구한 결과, 결국 분양가를 높이고 밀도를 높이게 되었던 과거를 되풀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 기회에 도시개발 제도를 개선했으면 한다. 현재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한 공영개발이 가장 보편적이나, 이는 대량의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신도시 개발에는 제약이 많다. 프랑스는 신도시 개발시 장기정비지구(ZAD)로 지정하여 지정 1년 전 토지가격으로 동결해 효율적으로 토지를 수용하고 단계적으로 개발을 시행한다.

판교에 만드는 신도시는 분당이나 일산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똑같은 모양과 높이로, 심지어 똑같은 베란다를 가진 아파트가 일렬 종대로 늘어선 도시에 우리 미래의 삶을 담을 수는 없다.
미국에서 필자가 한때 살았던 에반스턴이나 영국에서 살았던 워킹은 모두 대도시 인근의 아담하고 자전거 타기 편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동화 같은 도시들이다. 여유있게 토지를 구입하여 녹색의 띠를 두르고 전원도시를 개발하는 영국, 같은 건물은 두 개 이상 짓지 못하도록 하여 다양한 디자인이 넘치게 하는 프랑스의 신도시도 배울 만하다.

판교뿐 아니라 지방 대도시에도 신시가지 개발이 조속 추진되어 주택경기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