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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추경예산만이 능사인가 

보도일자 2001-10-12

보도기관 세계일보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 시작됐다. 어느 정도 장기화될지, 또한 적어도 일부 중동지역으로까지 확대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개전과 동시에 각국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쟁의 전개방향과 추가 테러의 발생 가능성에 따른 대처방안, 특히 자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테러 직후부터 주요 국가들은 발빠르게 경기부양책을 수립해 왔다. 당사국인 미국은 추가적인 감세에다 750억달러 규모의 재정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도 2조엔의 정부지출을 추가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전쟁 전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단계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상황에 따른 조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신속한 대응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책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2차 추경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이 지난 9월 설정한 시나리오의 세 번째 단계와 이번 시나리오 1단계 조치의 골자이다. 우선 문제가 되는 대목은 그 규모이다. 현재 정부에서 계획하고 있는 2조원으로는 얼어붙은 경기를 추스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초 5∼6%로 보았던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의 30% 이상 차지하고 있는 수출은 내리 7개월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외경제 여건이 더욱 불투명해지기에 기댈 곳은 내수 진작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2조원은 코끼리 비스켓에 불과하다.

경기부양 대책의 내용과 추진 방법에도 지적될 사항이 많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수개월간 우리는 구조조정과 경기부양 중 어느 것이 선행돼야 하느냐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그 와중에서 경기가 계속 악화되자 후자를 택했다. 이후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란 방법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했다. 결국 소득세 10% 경감 조치가 발표된 후 5조원 남짓 규모의 추경예산 편성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에도 감세 정책이 선진국에서처럼 성과가 나타날지 의구심이 제기됐다.

이어 내년도 예산안이 발표됐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는 하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경제를 부추기는 데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정부투자,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의 투자 증가율은 전체 예산 증가율을 밑도는 수준이다. 반면 경직성 경비와 복지부문 지출은 대폭 늘어나는 것으로 계상돼 있다.

경제정책이 선택의 문제임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기왕에 경기부양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었으면 확실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것처럼 우리도 감세정책을 채택했다면 최근 미국이 취한 경기부양 방식도 소홀히 보아서는 안된다.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를 재빠르게 결정하였고, 750억달러 중 150억달러 이상을 SOC에 투입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우리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특히 이러한 미 행정부의 정책이 초당적인 협조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올들어 8월 말까지의 통합재정수지가 16조원 이상 흑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재정수지 흑자분을 활용하여 최소한 5조원 규모의 제2차 추경예산을 신속하게 편성해야 한다. 그것도 단기간에 투자효과가 나타나는 SOC 부문에 집중 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년도 예산안도 국회 심의과정에서 재조정돼야 한다. 다만 정부투자의 확대가 내년의 각종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란 오인을 받지 않도록 투명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