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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건설 5적론에 관한여

보도일자 2005-09-12

보도기관 문화일보

정부의 8.31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중개업소와 중소건설업계가 한가해졌다. 그런데 얼마전 한 시민운동단체의 어느 인사가 건설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을사조약 때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에 빗대어 건설5적이니 개발5적이니 싸잡아 매도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그의 이야기대로라면 우리나라는 200만명의 도적이 활개를 치는 세계적인 범죄 국가인 셈이다. 그의 주장인 즉, 집 값이 오르는 것은 건설업계.공무원.정치인.언론.연구원 등 5적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집값 상승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해 싸우지는 않는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세계적인 저금리 정책과 경기 회복, 인구구조 변화 등이 맞물려 집값이 올랐다.
물건이 귀하면 값이 오르고 살 사람이 적으면 값이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부족하면 더 만들 생각은 않고 투기 억제 대책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격 상승은 부도덕한 투기꾼과 값을 올리는 건설업체 규제를 완화해 준 공무원 등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가격 상승을 경제 현상으로 보지 않고 반사회적 행휘로 규탄하려 한다. 내가 사면 실수요고 남이 사면 투기라는 배타적 구분이 사회를 어지럽게 한다. 집을 살 떄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이 자본 이득을 기대하며 집을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40-50만호의 주택이 건설된다. 이것은 전체주택의 3-4%에 해당한다. 기존 주택과 신규 주택이 어울려 있는 주택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 거래가 이루어진다. 신규 주택 가격도 영향이 있겠으나 그렇다고 이것이 전체 시장의 가격을 좌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주택 가격만 잡으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후분양이 이뤄지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선분양이 이뤄지는 것은 금융시장 여건상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이를 선호하기 때문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래는 어느 일방의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수요 공급의 탄력성, 자금조달 능력과 자본이득의 획득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 거래가 이뤄진다.
선분양이 되는 것은 그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지 일방의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다. 선물거래를 하건 현물거래를 하건 시장 상황에 따라 당사자가 결정할 사항이지 제3자가 이래라 저래라 개입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현물거래를 해야만 시장이 안정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건설산업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건교부 관련 규제 건수는 820건으로 전체 부처 가운데서 으뜸이다. 시장 기능이 위축돼 작은 충격에도 불안정해지는 것이 건설시장이다. 흘리는 땀에 비해 성과는 미흡하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규제가 많을수록 비용이 늘고 부정부패도 증가한다고 한다.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 대한 열정에서 과격한 표현들이 나온것으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산업 전체를 도적의 소굴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어려운 시정에 힘든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리는 더더욱 아니다. 다르더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 문명국가에서 취할 도리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된 시각이 사회 발전의 기본 전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