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타발간물

한강 개발사

출판일 2016-07-26

연구원 이덕수

불과 40여 년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나룻배가 유용한 도강 수단이었던 한강. 강변 대부분에 둑이 없었으니 여름이면 해마다 홍수가 범람했다.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인 AD 116년(백제 기루왕 40년)에 이미 범람 기록이 나타날 만큼 한강 홍수는 그 뿌리가 깊었다. 한강으로 인하여 한강 언덕에 신도읍을 건설했던 조선은 그러나, 한강을 다스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년 되던 1968년부터 본격화된 ‘한강 개발’은 역시 재앙에 가까웠던 홍수로부터 배태되었다. 1964〜66년 3년 동안 여름 홍수로 160명이 사망·실종되었고, 18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던 것이다. “벌거벗은 알몸을 송두리째 드러낸 수해 무방비 도시” 서울이 해마다 겪던 냉혹한 물난리를 막아보자는 데서부터 한강 개발이 비롯되었다.
  
  한강변에 제방을 쌓아 도로를 닦은 강변도로가 올림픽대로·강변북로로 확장·정비되기까지의 과정, 공유수면 매립과 여의도 및 잠실 개발, 30개소 41선의 다리 건설 과정 등을 팩트(fact)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 발간되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상호)이 기획 출판한「한강개발사(漢江開發史)」의 저자 이덕수 연구위원은 “20여 년에 걸친 한강 개발 과정을 오로지 기록 중심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또한, 고문헌들을 상고하는 과정에서 몇몇 사실(史實)을 새로 밝혀냈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한강 배다리가 고려시대에 이미 가설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규보(李奎報)가 그의 시 <題沙平原樓(제사평원루)> 제5행과 6행 사이에 “이때 배를 열 지어 다리를 놓았다(時列舟爲梁)”고 적었기 때문이다. 이 시(詩)로 미루어 이규보가 활동했던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중반경(1168〜1241) 사이, 한강 사평나루에 배다리가 가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마전포 배다리보다 최소한 180년 가까이 앞섰다. 기록상 최초의 한강 배다리인 셈이다.  
  둘째, 16세기 초반 한강에 석축 댐(dam)이 건설되었다. 즉, 조선 중종 31년(1536) 6월에 완공했던 살곶이 견항(犬項) 방색이 샛강 신천 입구 여울목을 가로질러 막았던 석축 댐이었다는 것. 저자는「중종실록」의 “橫防大江(횡방대강)”이라는 대목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실록을 근거로 견항 방색의 규모를 바닥너비 최대 37m, 높이 최대 4.7m, 길이 1.4km로 추정하였다. 상당한 규모였던 견항 방색은 1520년 대홍수로 섬이 되었던 잠실을 육속화하고자 축조되었다. 저자는 따라서 지금의 천호대교 북단 하류 부근에서 시작해 올림픽대교 북단 언저리를 지나 샛강 입구를 가로질러 막고 옛 잠실섬 북동쪽 깊숙이까지 댐을 쌓았던 것으로 비정하였다.
  이 외에도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남동 한강변에 있었던 정자 천일정(天一亭)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이 건립한 것으로 밝혀냈다. 아울러 천일정은 백사 이항복(李恒福)이 꿈속에서 지었다고 했던 양벽정(漾碧亭)을 현실세계에 구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유원은 이항복의 10세손이었다.
  
  또한, 한강 개발 과정에서 폭파되었던 밤섬이 람사르(Ramsar) 습지로 되살아나기까지의 과정, 선유봉이 선유도공원으로 변해온 과정, 인공 서래섬 이야기 등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특히, 1970년대 초 압구정지구 공유수면 매립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저자도 이야기는 그 내용이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립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50년대 후반부터 저자도는 이미 섬이 아니었다는 것. 이 책에서는 그 근거로 1922년판 지도와 1950년대 중반 지도를 대비시켜 놓았다.
  이 책에서는 사진자료 280여 컷을 수록했다. 그 중,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한강인도교와 광진교, 한강철교 사진 등이 이채롭다. 특히 1960년, 하늘에서 바라본 잠실·삼성동 및 청담동·뚝섬 일대 모습과 한강 최초의 택지매립 공사 기공식(1962년), 동부이촌동 공무원아파트 기공식, 여의도 국회의사당 기공식 장면 등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사진 여러 장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