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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가격경쟁력과 건설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

보도일자 2002-03-19

보도기관 한국건설신문

최근 각종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의 체감경기도 대단히 좋은 것 같다. 금년도 건설공사 수주액은 1997년 이래 처음으로 7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경제상황의 호전과 건설공사 수주물량의 증대로 인하여 건설산업이 다시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건설업계의 전반적인 재무구조도 IMF이전 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처럼 외형만 본다면 건설산업은 다시 재도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설산업의 구조나 생산체계, 기술수준과 같은 측면을 보면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해외건설수주도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산업은 점점 「내수산업(內需産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건설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지난 1997년에 일본에서 발간된 「건설대국(建設大國)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을 다시 한번 펼쳐 보았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이나 영국같은 건설대국에서는 건설공사비를 각각 50%, 30%씩 절감하겠다는 목표하에 건설업계와 정부는 물론 정치권까지 합세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겨우 10%절감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는데 대한 민간건설업계의 비판이다.

둘째, "건설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을 「가격경쟁력 향상」에 두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가격경쟁력의 개념에는 기술경쟁력이 포함되어 있다. 값싸고 좋은 시설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기술경쟁력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용을 곰곰히 읽다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우리도 정부주도하에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여러차례 수립했지만, 그때마다 수십개의 정책방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데 그쳤을 뿐 국제경쟁력의 본질이나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국제경쟁력의 본질을 「가격경쟁력」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 건설업계나 정부에서 가장 깊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의 경우는 항상 구체적인 가격경쟁력보다 추상적인 기술경쟁력을 내세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술은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익의 원천도 가격경쟁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건설업계의 수익의 원천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건설업체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 수익의 원천을 냉정하게 돌이켜 보자. 민간시장에서는 ''부동산경기''가 수익을 좌우했고, 공공시장에서는 ''자율조정''이 수익의 원천이었으며, 해외시장에서는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 이 시점은 공공시장에서의 자율조정 관행이 무너졌고, 해외시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민간시장에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최근 2~3년간 부동산경기가 활황세를 보였기 때문에 상당한 수익이 창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년 하반기부터 부동산경기의 과열양상이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민간시장에서도 곧 수익의 원천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결국은 우리 건설업계도 가격경쟁력을 높이는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에 걸친 건설산업의 위기극복과정을 보면, 우리 건설업계나 정부가 노력해 온 방향은 가격경쟁력의 향상이 아니었다.

부동산 및 주택 관련 규제완화를 통해 부동산경기를 부양하고, SOC투자확대를 통해 공사물량을 증대시키는데 치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공공사 낙찰률을 높임으로써 수익성을 보장해주고자 하였다. 해외건설의 경우 보증지원확대 등을 통해 수주증대를 지원하고자 하였지만 그 성과는 크지 않았다.

물론 단기적인 수주물량의 확대와 낙찰률 상향조정은 건설산업의 위기극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평가된다. 그렇지만 국내 건설시장의 규모가 이미 70조원대로 접어든 금년부터는 건설산업의 선진화와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질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이 필요하다.

''건설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을 제시하였던 일본 건설산업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보자.

12년간에 걸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100조엔이 넘는 돈을 공공공사 물량확대 등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부었지만 갈수록 경제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공사물량이 늘어나도 ''불량부적격업체''가 판을 치는 건설시장에서 나눠먹기식 분배가 이루어졌고, 가격경쟁력의 향상과 같은 건설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