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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백수에 대한 상식과 공식

보도일자 2007-03-26

보도기관 아시아경제

시중에서 피부로 느끼는 실업에 대한 감각을 ‘상식’이라고 한다면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실업에 대한 통계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식과 공식의 간격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시중에서의 상식은 주로 각종 조어로 표현이 된다. 취업난을 반영하는 조어를 보면, 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것을 생각한다는 ‘십장생’,  20대의 절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45세가 민간 기업의 정년이라는 ‘사오정’, 56세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 도둑놈이라는 ‘오륙도’ 등이 있다. 또한 백수를 표현하는 조어 중에는 할일없이 바쁜 ‘하바드생’, 동네 경노당에 출근하는 ‘동경대생’, 매일 노는 ‘장노’에다가 목적없이 사는 ‘목사’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중에서의 실업에 대한 절박감에 비하면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실업률에 대한 통계는 다소 한가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나라 실업률은 최근 5년간 3.3%~3.6%로서 OECD 27개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프랑스 9.7%나 독일 9.5%에 비해서는 1/3 수준이다. 시중에서는 20대 중 절반이 백수이고 설사 운이 좋아 취업이 되더라도 40대 후반에는 퇴출을 당해서 백수 신세로 전락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는데, 정부발표로는 우리 국민 중에서 취업의사가 있는 사람 중 3.5%를 제외한 모두가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실업률 통계는 실업자 수를 경제활동 인구로 나누어 백분율로 표시한다. 여기서 실업자는 지난 4주간 수입이 있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였으며 일이 주어지면 즉시 일을 할 수 있었던 자를 말하고, 경제활동인구란 취업자와 구직 의사가 있는 실업자를 합산한 것을 지칭한다. 실업률 산식의 맹점을 설명하기위해 한국개발원이 출제한  예문을 소개하면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고 있던 20대 후반의 철수는 당분간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집에서 쉬기로 하였다. 철수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실업률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철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길수록 실업률은 낮아진다”가 정답이다. 한 명의 구직 단념자가 생기면 분자인 실업자도 1명 줄고 분모인 경제 활동 인구에서도 1명이 준다. 분모가 분자보다 큰 경우에 분모와 분자에서 각각 같은 수를 빼면 산술적으로 비율이 낮아진다.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집에서 쉬는 사람이 많아 질수록 실업률은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 다른 맹점은 취업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취업자란 수입을 목적으로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한 자, 18시간 이상 무급 가족노동 종사자, 일시 휴직자가 포함이 된다. 소위 쓸 만한 일자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불안정한 고용임에도 양호한 고용과 동일한 취업자로 취급이 된다. 최근 일용직,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 비중이 급속히 늘어나서 취업자의 30%를 훨씬 넘어섰다. 고용구조의 변화와 열악성이 취업자 기준의 모호성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중대한 맹점이다.  

최근 사회적인 관심이 일자리 창출에 모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현실성 있는 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소득이든 고용 시간이든 일정한 기준을 정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는 실업으로 간주한다거나 통계 처리상 불가피하다면 취업 상태를 좀더 세분화하는 방법으로라도 시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지표를 개발.사용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는 실업자가 늘어나고 고용조건이 열악해지는데도 취업 상태는 양호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경보장치가 고장난 것과 같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투자 여건 조성이나 규제 완화 조치에 못지 않게 기존 통계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바로잡는 것도 긴요한 과제다. 고장난 경보장치로는 다가올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