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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숭례문 소실의 에필로그

보도일자 2008-02-21

보도기관 아시아경제

설 연휴 마지막 날 나라의 보물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여겨지던 민족 문화유산의 상징인 숭례문(崇禮門)이 방화로 소실됐다.

더 안타까운 일은 화재가 계속되던 5시간여 동안 소방당국은 그저 소방호스로 물만 뿌려댈 뿐 숭례문을 화마로부터 구해낼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안타까움 속에 숭례문은 처참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고, 타다 만 나무들의 잔해만이 석축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모습은 온 국민들의 가슴에 크나큰 정신적 충격과 아픔으로 남았다.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조선시대 6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도읍지를 지킨 성문(城門)이다. 1398년(태조 5년)에 완공된 후 1447년(세종 29년)과 1479년(성종 10년)에 고쳐 지은 숭례문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영욕의 세월을 견디며 꿋꿋하게 위용을 지켜왔다.

민족의 자존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문화재지만, 우리에겐 가까운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숭례문이 우리들의 무관심과 관리소홀로 어이없게 일순간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더 가슴 아픈 것은 방화로 크게 훼손된 숭례문 후속처리에 있어 관계 당국의 경박한 졸속처리 행태다. 숭례문 소실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둘러싼 책임공방은 그렇다치고 그저 치부를 가리기에 급급해 차단막을 에둘러 설치하는 모습은 시민의 안전확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 속셈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원인분석은 차치하고, 관계당국이 사고 직후 2~3년이면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발표에 이르러서는 왜 그토록 서두르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냉정하고 차분한 대처는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국민들의 분노를 조기에 가라앉히고 희석시키려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겉모양만 비슷하다고 해서 사라져버린 국보 문화재의 가치가 원래의 상태로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TV광고에서도 무엇을 만들든지 혼을 담아야 하고 잔재주를 부리면 끝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시행정의 표본과 무엇이든지 빨리 해치우려는 조급증이 국보 1호를 잃어버린 이 순간에도 망령처럼 우리 곁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두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현실 앞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경제성과 효율성 등 디지털 시대가 가져다 준 단 맛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다.

물론 현대는 속도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가 되고 순간적 판단과 재빠른 적응력이 요구되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다. 그러나 사안의 체계적인 원인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고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은 건설인들의 마음과 자세에도 중요한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건설분야에서도 준공기일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완성된 건축물이 후세에 이르기까지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소홀하거나 뒤로 미뤄지는 게 다반사다.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제 값을 주고 시간과 공을 들여 건설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으며, 잡부의 공임으로 장인의 솜씨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