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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턴키제도 개선 ''기본''을 직시하자

보도일자 2009-07-13

보도기관 건설경제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1면에 턴키공사의 로비와 관련된 기사가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또다시 건설업이 부정·부패·비리의 근원지로 각인되기에 충분한 기사였다. 건설업 종사자라면 심한 자괴감을 느낀 그룹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룹으로 나눠졌을 것이다. 기사는 심의과정의 비리 원인으로 잘못된 제도를 지적했는데, 담당공무원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으리라 본다.

우리나라가 턴키제도를 도입한 것은 기술력 향상을 위한 목적이 강하다. 기술력 변별을 위해 설계 비중을 높였고, 수주 경쟁력을 좌우하도록 만들어 놨다. 설계 평가를 위해 외부전문가를 투입케 했으며, 비리를 차단한다며 평가위원 후보자는 3000명의 풀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또다시 제도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제도도입 목적이나 평가제도 모두가 실패했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 거론되는 제도개선 방향이 ‘기본’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전을 내놓기 마련이다. 현행 턴키 심의제도의 실상과 문제점은 이렇다.

 

문제 생기는 원인 제대로 봐야

첫째, 선진국들이 턴키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공기단축은 물론 발주자의 계약관리 편의성 확보, 계약자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4000여 년 전 함무라비법전에 도입된 도목수(Master Builder)와 같은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술력=설계’라는 식으로 설계에 대한 배점을 높여 놨다.

둘째, 심의과정에 발주기관이 보이지 않는다. 턴키방식의 결정은 발주기관의 몫임에도, 선택권은 없다. 발주자가 능력이 없거나 외부전문가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잘못된 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 구조다. 평가 결과란 낙찰시점이 아닌 준공시점에서의 평가다. 평가가 발주기관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셋째, 외부심의위원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풀제라고 하지만 모든 공사에 전문가는 없다. 따라서 상품별로 나눠지게 돼 있다. 심의위원에게 주어지는 불과 ‘몇 시간’의 평가시간도 문제다. 보통 3~4개 입찰컨소시엄이 제출하는 설계문서를 비교평가하는 데 적어도 10일 이상 걸리는데, 이를 단 몇 시간 만에 하라는 것은 비리의 소지가 생기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눈에 익은 설계문서에 높은 점수를 주기 십상이고, 일부 심의위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는 조건이라는 뜻이다.

 

턴키 중앙조달하는 선진국 없다

넷째, 중앙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다. 투명성만 확보하면 그만인 것처럼 발주방식에서부터 평가항목, 배점기준·비중, 심의위원 구성에까지 획일화시켜 놨다. 턴키발주방식조차 중앙조달을 하고 있는 선진국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다섯째, 업체들의 로비 불가피론이다. 수주가 생명인데 먹잇감을 놓고 도덕군자처럼 구경만 해야 하는가하고 반문한다. 기술력보다 로비가 더 중요하다면 왜 굳이 기술자를 고용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 오히려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해 달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여섯째, 왜 건설시장에서 범법자를 보호해 줘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잘못된 관행이라고 하지만 일부 심의위원들의 부정을 덮어두려고 한다. 국민들의 눈높이로는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건설시장에서는 왜 감싸주려 하는지, 지나치게 일과성으로 치부하려는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문제의 발생 원인과 해결책은 반드시 결부되어야 한다. 이 같은 ‘기본’에 입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앙정부의 개입은 주문과 평가를 거쳐야 한다. 발주기관에 재량권 부여와 함께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평가를 하는 데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게 평가 시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발주기관별로 전담부서를 만들어 운영하라는 주문이다. 발주기관의 역량이 모자란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민간건설공사에서 발주자의 책임성이 이런 주장에 대해 가장 적당한 답변이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