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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한국의 랜드마크 구조물을 세우자

보도일자 2009-09-15

보도기관 건설경제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일명, ‘가우디 성당’)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성당은 1882년 첫 삽을 뜬 뒤 127년째 건설 중이다. 현장관계자 는 2025년경 완공예정이라고 하면서도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도 믿지 않는다는 귀띔(?)까지 해준다.

그러니 필자를 비롯하여 전 세계 구경꾼들은 2만3000원(13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완성 공간이 아닌 건설현장을 구경하는 셈이다. 무엇이 이처럼 지구인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 것일까. 파리의 에펠탑이나 워싱턴DC의 워싱턴기념비도 마찬가지다. 이들 구조물은 사회기반시설이 아닌 무엇인가를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회 필수시설은 아닌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우디 성당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건축가 가우디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있다. 구엘공원, 가우디건물 등이 그것인데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127년째 건설 중 가우디성당

우리나라에도 안토니 가우디와 같은 건축가가 탄생할 수 있을까.

‘불가능’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건축가의 자유로운 상상이 전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우디식 사고는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없어야 할 곳에 있는 비대칭’, 그리고 ‘복제 불용’이다. 벽면에 붙이는 타일이나 조각 등도 하나도 같아서는 큰일 날 것처럼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멀리서 보면 묘한 조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구조물의 안전은 정밀한 계산보다 경험적 판단에 의한 입체기하학을 배경으로 했다.

무엇보다 완성된 도면 없이 구조물을 경험적 판단에 의해 완성해가는 방식은 한국적, 제도적 사고로 볼 때는 ‘불가’다. 국내 건축기준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상상은 법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나 공공재정이 아닌 개인 기부나 특정 민간단체 등의 기금으로라면 가능할까? 그것도 힘들다. 개인 혹은 단체에 의해 건설된 랜드마크성 구조물은 사회 혹은 국가 재산은 될 수 있어도 개인 재산은 될 수 없다. 사회적 자산은 국내뿐만 아니라 지구촌으로부터 경제적 수입을 유발할 수 있다. 에펠탑은 프랑스공화국 탄생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세계박람회 시기에 때를 맞췄지만 이를 건설한 구스타브에펠 건축가의 속셈은 이를 관광자산으로 만드는 데 뒀다고 한다.

우리는 외국의 랜드마크 구조물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국내에는 건설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도 지구인들의 시선을 끌 만한 랜드마크성 구조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설계와 재원을 끌어낼 수 있는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는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건설관련 유관단체로, 이들이 나서면 해결될 듯싶다.

 

건설유관단체가 주도했으면

국내에서는 일반적인 인식이 ‘초고층=랜드마크’이다. 서울의 잠실과 상암동에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100층 이상이 분명 랜드마크성은 있지만 사회적 자산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단지 높이만으로 지구인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시간적 한계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다고 에펠탑을 모방한 도쿄타워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그리고 단기간 내 이를 완성할 필요도 없다. 겉에서 보면 단순한 높이 169m의 워싱턴 기념탑도 3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건설유관단체가 나서서 세계적인 랜드마크성 구조물을 건설하겠다면 장기간 기획을 거쳐 설계공모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절차와 구상은 기존의 법·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건립안 자체가 유·무형적 토론이 한계 없이 되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 논란은 결과적으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나면 정부와 사회도 수용할 것이라 믿는다.

건설산업이 이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효과는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만 비치는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계획을 발표하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이미지 개선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국을 대표할 랜드마크성 시설물은 자유로운 발상에서 탄생되어야 지구인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 건설이 한국의 시각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