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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50대 건설인의 뉴노멀

보도일자 2010-05-19

보도기관 건설경제

“요즘 TV 개그프로를 보면 이해가 잘 됩니까? 아이들은 배꼽 잡고 웃는데 나는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중견 건설인 점심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50대가 거의 대부분인 참석자들은 모두 나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그것은 논리적으로 따지려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름의 이유를 갖다 댔다. 농담으로 오고 간 이야기지만 한번쯤 되새겨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됩니까?” 그리고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 속에 이미 자신만의 수용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어른들은 자신만의 논리로 젊은이들의 웃음세계를 이해하려 드는 것이다. 이것이 직장과 가정에서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50대 남성의 서글픈 자화상이라면 좀 심한 표현일까?

 “요즘 개그맨들의 황당한 대사를 이해하려면 다양한 맥락의 관점 바꾸기가 가능해야 한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웃어야 할 순간을 한참 지난 후에야 웃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고춘자 장소팔 식 만담이 어울린다. 고춘자 장소팔 식 유머는 이야기 속도만 빠를 뿐, 스토리텔링은 아주 단선적이다. 관점 바꾸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삶이 재미없다는 것은 관점 바꾸기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에겐 반드시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 나오는 내용으로 그저 웃어 넘기기엔 심각한 이 시대 중년 남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관점 바꾸기. 대부분의 40대 중반 이후 한국 중년 남성들은 이것을 잘 하지 못한다. 관점 바꾸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언제나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논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면 소통과 공감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중년 남성들은 지금 심각한 소통장애증후군과 공감불능증에 빠져 있다.

 그래도 직장에서는 좀 낫다. 과거보다는 못하지만 높은 직급이나 직책의 힘으로 누르면 마지못해 통하기라도 한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정말 힘들다. 도대체 아내와 자식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정말 답답할 지경이다. 왜 그럴까? 관점 바꾸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입장, 자식의 입장에 서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임’의 저자 최인식 교수는 어른들은 자기도 젊었을 때 그랬으면서 어른이 된 지금의 잣대로 자식을 훈계한다고 말한다. 이래서는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고 변화시킬 수 없다. 10대 또는 20대 자식의 관점으로 다가서야 대화가 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소통의 기본법칙이다.

 고도성장기 한국의 기업문화가 우리 중년 남성들을 소통불능병 환자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건설업이 대표적이다. 중년 이상의 건설인이라면 빨리빨리와 명령지시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이 방식을 통하여 지난 30여 년간 한국 건설산업은 빠르게 성장해 왔다.

 “해보기나 해봤어?” 한국 건설의 신화, 정주영 회장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그러나, 이제 건설경영과 시공현장의 어디에도 이러한 명령조 지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말로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의 자발적 협조를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세상을 원망해도 소용없다. 바뀐 세상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야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다.

 요즘 위기를 맞고 있는 건설업계에 뉴노멀의 필요성이 부쩍 강조되고 있다. 건설기업이 새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뀐 산업환경이 요구하는 새로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50대 중견 건설인들에게도 뉴노멀이 요구된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세상을 한탄하기에는 남은 세월이 너무도 길다. 우선,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50대 베이비 붐 세대의 서글픈 직장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문지식이나 체력이 부족해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동료와 아랫사람, 나아가 고객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지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력있는 건설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뉴노멀의 전략 속에는 반드시 소통과 공감의 자질이 포함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직장에서도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 자신의 모습을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소외당하면서 혼자만의 성에 갇힌 쓸쓸한 노년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50대 건설인들이여, 지금 당장 소통과 공감의 뉴노멀을 가슴 깊이 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