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미학
보도일자 2010-06-10
보도기관 아시아경제
최근 한 달 새 해외출장을 두 차례 다녀왔다. 시차적응이나 피로 회복이 역시 예전 같지 않다.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쉬 피곤해지고 운동신경이 떨어지며 작은 글씨에는 자주 짜증이 난다. 몸과 마음 모두 늙어가는 현상인가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사회적인 시각이 편치 않다.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미래 한국의 모습 중 대표적인 것이 고령화 노인사회이다. 객관적인 사실 보도라기보다는 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대폭 늘어난다는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노인이 지켜야 하는 세븐 업''이 있다. 부지런히 나다니되 제 의견 앞세우지 말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비우고 금전을 아끼지 말라는 요지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노인을 비하하는 내용일 수 있다. 개발연대에 태어나서 고도성장을 견인하며 오늘을 만든 선배들의 공은 다 어디가고 젊은이에게 치이는 딱한 처지가 되었던가.
느림의 미학도 찬양받는 요즘 개인적으로는 베이비부머로 곧 노년기에 접어들 입장에서 나이 듦의 미학을 생각해본다. 인생의 가을, 추수철을 맞이하면 봄과 여름에 뿌리고 가꾼 결실을 거두는 기쁨이 있다. 꿈에 부푼 봄, 싱그러운 여름 못지않은, 가을의 행복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 있지만 겨울 예찬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춥고 눈보라치는 그런 겨울이 아니라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곡이 주는 영롱함, 청명함, 조용함, 편안함의 계절을 느껴보라.
비유를 떠나 실제로 노년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십년, 이십년 전으로 되돌아 갈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곰곰 따져보면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당시의 감정적 소모, 삶의 번뇌, 안정을 위한 노력, 타인과의 경쟁, 지나간 집안의 대소사 등을 다시 겪는다는 것이 선뜻 반겨지지 않는다. 서정주 시인의 시처럼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듯한 편안함도 젊음만큼이나 소중하다.
정신적인 안정과 함께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혜를 연장자의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조직의 문제를 능숙하게 풀어내는 선배들의 능력을 후배들은 단순히 지식, 순발력으로 해석할지 몰라도 실은 세월이 가져다 준 상식과 통찰력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그리스 격언은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보여준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에도 지혜로운 노인이 필요하다.
레이건이 미국 대선에 나섰을 때였다. 상대 후보가 노령을 이유로 공격을 하자 젊음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을테니 안심하라고 반격했다. 결국 레이건은 대통령으로 선출돼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족적을 남겼다. 그렇다. 노인을 배려해야 하는 약자로만 보지 말고 사회에 기여할 능력이 있는 자원으로 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공경의 대상으로만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가치 있는 생산력을 지닌 계층으로서 적극적인 평가가 자리 잡아야 한다.
연민의 대상으로서의 노인을 거부하며 아주 편안하고 자족적인 노인을 그려보았다. 또 나이 듦에 따라오는 미덕과 능력을 나열하며 이를 국가를 위해 활용하자고 주창했다. 밝은 면만 강조한 이면에는 추하게 늙지 말자는, 늙음을 눈앞에 둔 필자의 다짐이 있다.
늘 존경하던 오래된 지인이 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연구조직의 경영자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려왔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가 한발 앞서 아름다운 노년의 사표가 돼주기를 기대해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사회적인 시각이 편치 않다.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미래 한국의 모습 중 대표적인 것이 고령화 노인사회이다. 객관적인 사실 보도라기보다는 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대폭 늘어난다는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노인이 지켜야 하는 세븐 업''이 있다. 부지런히 나다니되 제 의견 앞세우지 말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비우고 금전을 아끼지 말라는 요지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노인을 비하하는 내용일 수 있다. 개발연대에 태어나서 고도성장을 견인하며 오늘을 만든 선배들의 공은 다 어디가고 젊은이에게 치이는 딱한 처지가 되었던가.
느림의 미학도 찬양받는 요즘 개인적으로는 베이비부머로 곧 노년기에 접어들 입장에서 나이 듦의 미학을 생각해본다. 인생의 가을, 추수철을 맞이하면 봄과 여름에 뿌리고 가꾼 결실을 거두는 기쁨이 있다. 꿈에 부푼 봄, 싱그러운 여름 못지않은, 가을의 행복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 있지만 겨울 예찬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춥고 눈보라치는 그런 겨울이 아니라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곡이 주는 영롱함, 청명함, 조용함, 편안함의 계절을 느껴보라.
비유를 떠나 실제로 노년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십년, 이십년 전으로 되돌아 갈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곰곰 따져보면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당시의 감정적 소모, 삶의 번뇌, 안정을 위한 노력, 타인과의 경쟁, 지나간 집안의 대소사 등을 다시 겪는다는 것이 선뜻 반겨지지 않는다. 서정주 시인의 시처럼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듯한 편안함도 젊음만큼이나 소중하다.
정신적인 안정과 함께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혜를 연장자의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조직의 문제를 능숙하게 풀어내는 선배들의 능력을 후배들은 단순히 지식, 순발력으로 해석할지 몰라도 실은 세월이 가져다 준 상식과 통찰력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그리스 격언은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보여준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에도 지혜로운 노인이 필요하다.
레이건이 미국 대선에 나섰을 때였다. 상대 후보가 노령을 이유로 공격을 하자 젊음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을테니 안심하라고 반격했다. 결국 레이건은 대통령으로 선출돼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족적을 남겼다. 그렇다. 노인을 배려해야 하는 약자로만 보지 말고 사회에 기여할 능력이 있는 자원으로 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공경의 대상으로만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가치 있는 생산력을 지닌 계층으로서 적극적인 평가가 자리 잡아야 한다.
연민의 대상으로서의 노인을 거부하며 아주 편안하고 자족적인 노인을 그려보았다. 또 나이 듦에 따라오는 미덕과 능력을 나열하며 이를 국가를 위해 활용하자고 주창했다. 밝은 면만 강조한 이면에는 추하게 늙지 말자는, 늙음을 눈앞에 둔 필자의 다짐이 있다.
늘 존경하던 오래된 지인이 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연구조직의 경영자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려왔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가 한발 앞서 아름다운 노년의 사표가 돼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