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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근대 교량의 효시, 한강철교 ②

보도일자 2011-03-02

보도기관 건설경제

‘무지개 타고 하늘을 나는 인생의 쾌사’

한강을 가로질러 경인철도의 용산~노량 구간을 잇는 한강철교 건설공사는 1897년 3월 29일 착공해 1900년 7월 5일 준공됐다. 당초 착공은 조선 정부로부터 경인철도 부설권을 특허(1896년 3월 29일)받은 미국인 모스가 주도했으나, 1898년 5월 10일에 부설권이 일본 재벌들로 구성된 경인철도합자회사로 양도(170만2452원75전)됨으로써 그 이후의 실질적 건설공사는 일본인들이 추진해 완공했다. 한강철교 경우는 모스에 의해 양쪽 교대와 제1, 2, 9호 교각이 완공된 상태에서 일본측이 인수했으나, 인수 이후 안전도 검사 결과 양 교대 외에는 조잡하고 부실해 다시 가설했다고 한다. 따라서 본격 공사는 1899년 4월 23일부터 시작됐으며, 실질적 공사 기간은 270여 일이었다.

1915년에 간행된 <朝鮮鐵道史(조선철도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강교량(鋼橋粱)의 효시이기도 한 한강철교 건설공사엔 강철 1200t, 벽돌 120만 장, 석재 5만 개, 시멘트 5000포, 받침목 3000개, 기타 목재 6000재 등의 자재가 소요됐으며, 총공사비는 약 40만원(圓)이 투입됐다.

경인철도가 개통될 당시 경인철도합자회사는 한강철교를 “노량철교는 미국에서 제작한 최근의 신법이요, 천하에 드물게 보는 바이다. 연장 3천척, 마치 긴 무지개가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다. 긴 무지개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인생의 쾌사라 않을 수 없다”라고 선전하며 승객을 유치하고자 했다.

제2철교 B선과 제3철교 C선

한강철교(A선)가 준공되고 3일 후인 1900년 7월 8일부터 경인철도의 서울(서대문)~인천 전 구간 직통 운전이 개시됐고, 이어 경부선 철도가 부설돼 1905년 1월 1일부터 서울~초량 전 구간 운행을 시작하면서 철도 수송량이 급증했다. 당연히 기존 시설의 개량이 요구됐다.

특히, 선로 복선화 필요성이 절실하게 제기되면서 한강 제2철교가 가설되기에 이르렀다. 1911년 7월에 기존 A선의 상류 쪽에 건설공사를 착공한 제2철교 즉, B선은 이듬해인 1912년 9월에 준공됐다. 이 공사에선 압록강교 건설공사에서 도입했던 잠수함침강(潛水函沈降) 방식을 채택했다고 하며, 공사비는 기존 A선 개량비 39만6000원을 포함해 총 129만8000원이 투입됐다. 이어 1913년 5월엔 기존 A선의 강형(鋼桁)을 교체했으며, 강도가 문제시됐던 일부 교각도 개축했다.

그리고 1925년(乙丑年) 7월 17일에 대홍수가 발생해 한강 수위가 12m까지 올라가면서 본 교량과 피일교 사이에 쌓았던 제방이 유실되는가하면, 강형의 아래쪽 60㎝ 정도도 탁류에 휩쓸려 버렸다. 이에 따라 용산 쪽의 유실된 제방 자리에 새로 교각을 세웠으며 강형도 90㎝ 정도 더 높여 가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