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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근대 교량의 효시, 한강철교 ③

보도일자 2011-03-03

보도기관 건설경제

[이덕수의 길따라 기록따라 81]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A선의 하류 쪽 50m쯤에 한강철교 C선을 건설했는데, 이는 만주사변(滿洲事變) 이후 수송량이 폭주했거니와 일본과 한반도, 만주를 연결하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했던 일제의 군사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교량 C선의 당초 건설과 관련된 기록은 찾을 길이 없다. 조선총독부가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中日戰爭) 이후의 모든 자료와 기록을 기밀로 봉쇄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강철교 C선은 1944년 6월 준공됐는 바, 전쟁으로 인한 자재난 등이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철교 폭파에서 완전 복구까지 19년

20세기의 출발선상에서 건설돼 한반도 근대화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던 한강철교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 한강인도교와 함께 아군의 작전상 폭파로 완전 폐선됐다. 그리고 수도 서울을 수복한 후 1951년 4월 22일 가운데 A선의 가복구 공사를 착공해 그해 6월 12일 준공했으며, 그 이듬해인 1952년 2월 11일에는 상류 쪽 B선의 가복구 공사를 착공해 같은 해 6월 30일 완공했다. 이어서 하류 쪽의 복선 철교 C선은 1952년 10월 완전 복구공사에 착공, 1957년 7월 5일 준공ㆍ개통했다. 교량의 구조는 강재 트러스교이며, 기존 교량들과의 조화를 고려해 중앙 경간의 형고(桁高)를 높인 곡현형(曲弦型)으로 설계해 역(逆)아치형의 3경간 연속복사구형(連續複寫構桁) 방식을 취했으며, 가운데 경간은 길게 하고 양쪽 끝 경간은 짧게 했다. 이 C선이 개통되면서부터 가복구로 이미 노후화된 AㆍB선의 운행은 중지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67년 8월 28일 AㆍB선의 복구와 함께 경인선 복선화 공사를 착공해 1969년 6월 28일 준공ㆍ개통했다. 폭파된 지 19년 만의 일이다. 이때 준공된 A선의 연장은 1112.8m였으며, B선은 1110m였다. 공사비는 총 2억7000만원이 투입됐다. 복구공사에서 철거한 트러스는 전남 완도로 옮겨 완도교(1968년 12월 준공) 가설 공사에 활용했다.

그리고 1995년 D선(연장 1112.8m, 폭 12.6m)이 복선으로 건설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D선은 C선과 외형적 쌍둥이 교량으로 건설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유도상(有道床) 강철도교(鋼鐵道橋) 형식을 채택했다. 이 다리 건설에 소요된 강재는 6751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