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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사람의 행동을 이끄는 두 개의 규칙

보도일자 2011-03-08

보도기관 건설경제

윤영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어느 잡지사가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나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스타들을 표지 모델로 섭외한다면 얼마나 많은 광고료를 요구할까? 아마 보통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든 액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세계적 스타들이 공짜로 표지 모델에 등장한 잡지가 있다.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발간되는 잡지 〈빅이슈〉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유로 세계적 스타들이 이 잡지에 공짜 모델이 되었을까?

 댄 애리얼리가 쓴 <상식밖의 경제학>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미국퇴직자협회가 몇몇 변호사들에게 가난한 퇴직자를 위해 시간당 30달러의 저렴한 비용에 법률서비스를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변호사들은 거절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협회의 담당자가 기발한 생각을 했다. 그는 변호사들에게 가난한 퇴직자들을 위해 무료 법률서비스를 해 줄 수 있는지 재차 물었다. 놀랍게도 변호사들은 응낙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경제심리학자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개의 세계, 즉 ‘사회규범’이 우세한 세계와 ‘시장규칙’이 우세한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다. 이 두 세계는 상호배타적이다. 사람은 둘 중 하나의 규칙을 선택해 행동한다. 둘을 적당히 얼버무리면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앞의 사례에서 변호사들은 시장규칙에 따른 자신들의 시간당 가치를 30달러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차라리 좋은 일을 위해 무료봉사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 훨씬 낫다. 〈빅이슈〉에 세계적 대스타들이 공짜모델이 되어 준 것도 같은 이유다. 때론 사회규범과 관련된 명분이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돈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회규범은 매우 예민해서 시장규칙을 어설프게 적용했다간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벌금 부과 후 부모들은 아이를 늦게 찾아가도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사회규범이 시장규칙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탁아소가 벌금을 없애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벌금을 없애니 부모들은 아이를 늦게 찾아가고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횟수도 더 늘어났다. 이번에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 둘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이 충돌하면 사회규범은 무력해지고 다시 세우기도 어렵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제임스 마치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대개 두 개의 모델 가운데 하나를 따른다고 한다. 즉, 결과 모델 또는 정체성 모델을 따른다는 것이다. 결과 모델을 따르는 사람은 비용-편익을 계산한다. 철저하게 돈으로 평가해 유리한 쪽을 선택한다. 이에 비해 정체성 모델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한다. 여기에는 인종, 지역같이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공동체의 가치에서부터 살아가면서 형성한 사명이나 신념 등도 포함된다. 특허기술을 발명한 대학 교수가 고액연봉과 고위직을 제시하는 기업체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시장규칙과 사회규범의 세계, 그리고 결과 모델과 정체성 모델은 기업경영에 많은 시사를 준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미국의 한 병원이 간호사들의 높은 이직률 문제로 고심했다. 문제해결 책임자는 이직하는 간호사들에게 떠나는 이유를 묻지 않고, 남아 있는 간호사들에게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돈도 적고 일은 힘들지만 간호업무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뒤 병원은 간호사들에게 만족감과 정체감을 높여주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직률은 크게 떨어졌다.

 물론 돈은 사람의 행동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좋지 못한 쪽으로도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고의 대학을 졸업해서 월가의 투자회사에 취직한 지 3년 정도 된 직원이 30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회사에 취직할 때 그는 이때쯤 되면 10만달러 정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불만이 많았다. 왜일까? 자신과 능력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옆 동료가 31만달러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모든 문제를 돈으로만 풀 수는 없다. 현명한 경영자는 사회규범의 관점에서 종업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다양한 방법을 시행한다. 칭찬과 격려, 선물이나 위로금,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도 해고를 자제하는 것 등은 모두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런 언행을 보이다가 불쑥 “돈이 얼마나 드는데?” 같은 속보이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고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인간적 관계를 지켜 나가고 싶다면 사정이 바뀌었다고 시장규칙을 들이대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 없다면 처음부터 시장규칙을 일관되게 지켜 나가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