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대교- 우리 기술로 세운 첫 장대 교량
보도일자 2011-03-28
보도기관 건설경제
[이덕수의 길따라 기록따라 90]
광복 이후 최초로 건설한 한강 다리
1900년, 1917년과 1936년에 한강철교, 한강인도교와 광진교가 각각 건설된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한강에는 더 이상 다리가 건설되지 않았다. 따라서, 광복 당시 한강의 다리는 한강철교ㆍ한강인도교ㆍ광진교 셋뿐이었다. 그리고 광진교가 개통된 지 4반세기가 지난 1962년에 네 번째 한강 다리이자 한강의 도로 교량으로는 세 번째로 제2한강교 건설 공사가 착공되었다. 그 해 5월 20일에 착공한 제2한강교는 2년 7개월 만인 1965년 1월 25일 준공하였다. 당시 제1한강교(옛 한강인도교, 현 한강대교)와 광진교만으로는 늘어나는 교통량을 소화하기에 벅찼을 뿐만 아니라, 서부전선과 한강 남부 지역을 직접 연결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에 광복 이후 최초의 한강 다리가 하류 지역에 건설된 것이다.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제2한강교가 개통되면서 서울 도심에서 김포공항에 이르는 거리는 4km, 시간은 20분 정도가 단축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홍제동~신촌 구간의 도로가 개설되어 이 다리와 직결됨으로써 영등포~서부전선의 거리가 약 6km 정도 줄어들었으며, 시간도 48분이 단축되어 연간 3000만원 어치 가량의 휘발유가 절약되었다고 한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장대 교량 기술 자립
제2한강교는 특히 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우리 기술진의 손으로 이룩한 최초의 장대교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통 당시의 다리 연장은 1048m, 폭은 18m였다. 하부는 우물통 기초, 상부 구조는 3경간 연속 플레이트 거더 방식의 간단한 구조로 건설되었으며, 노면은 4차선 차도(13.6m)와 보도(4.4m)로 구성하였다. 공사비는 5억1242만원이 투입되었으며, 주요 자재로는 시멘트 9500톤, 철근 3900톤, 강재 2336톤 등이 소요되었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었다.‘현대건설 60년사’에서는 제2한강교 건설 공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초보적 교량 건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4~5차례에 걸친 홍수 피해로 공기가 지연돼 3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공기 단축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를 무사히 완공시킨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경사였다. 다리 준공식에 토목계 원로 200여 명을 초청하였고 현대건설 무교동 사옥에서 대대적인 준공 파티를 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14년 가까이 지난 1979년 1월, 제2한강교의 폭을 34.1m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의 급격한 교통량 증가와 함께 교량이 노후화됨으로써 교량 상류 쪽으로 노폭 16.1m(4차선)의 새 다리를 잇대어 건설하게 된 것이다. 1982년 2월에 완공된 연장 1,053m의 새 다리 역시 기존 다리와 같은 구조 형식을 채택하였다. 시공은 삼부토건이 맡았으며, 공사비는 149억원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한강종합개발과 더불어 다리 이름도 양화대교(楊花大橋)로 바꾸었다. 이어 1990년대 말에 하류 쪽 구교(舊橋)의 상부구조를 전면 철거한 후 재시공하였으며, 하부구조도 성능을 개선하여 2000년 6월 26일에 재개통(연장 1,048m)하였다. 또한 상류 쪽 다리도 2000년 6월부터 보수ㆍ보강 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4월에 완전 재개통하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연구위원 <한국건설기네스(Ι)길> (이덕수 지음-도서출판 보성각) 발췌ㆍ정리
광복 이후 최초로 건설한 한강 다리
1900년, 1917년과 1936년에 한강철교, 한강인도교와 광진교가 각각 건설된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한강에는 더 이상 다리가 건설되지 않았다. 따라서, 광복 당시 한강의 다리는 한강철교ㆍ한강인도교ㆍ광진교 셋뿐이었다. 그리고 광진교가 개통된 지 4반세기가 지난 1962년에 네 번째 한강 다리이자 한강의 도로 교량으로는 세 번째로 제2한강교 건설 공사가 착공되었다. 그 해 5월 20일에 착공한 제2한강교는 2년 7개월 만인 1965년 1월 25일 준공하였다. 당시 제1한강교(옛 한강인도교, 현 한강대교)와 광진교만으로는 늘어나는 교통량을 소화하기에 벅찼을 뿐만 아니라, 서부전선과 한강 남부 지역을 직접 연결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에 광복 이후 최초의 한강 다리가 하류 지역에 건설된 것이다.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제2한강교가 개통되면서 서울 도심에서 김포공항에 이르는 거리는 4km, 시간은 20분 정도가 단축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홍제동~신촌 구간의 도로가 개설되어 이 다리와 직결됨으로써 영등포~서부전선의 거리가 약 6km 정도 줄어들었으며, 시간도 48분이 단축되어 연간 3000만원 어치 가량의 휘발유가 절약되었다고 한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장대 교량 기술 자립
제2한강교는 특히 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우리 기술진의 손으로 이룩한 최초의 장대교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통 당시의 다리 연장은 1048m, 폭은 18m였다. 하부는 우물통 기초, 상부 구조는 3경간 연속 플레이트 거더 방식의 간단한 구조로 건설되었으며, 노면은 4차선 차도(13.6m)와 보도(4.4m)로 구성하였다. 공사비는 5억1242만원이 투입되었으며, 주요 자재로는 시멘트 9500톤, 철근 3900톤, 강재 2336톤 등이 소요되었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었다.‘현대건설 60년사’에서는 제2한강교 건설 공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초보적 교량 건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4~5차례에 걸친 홍수 피해로 공기가 지연돼 3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공기 단축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를 무사히 완공시킨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경사였다. 다리 준공식에 토목계 원로 200여 명을 초청하였고 현대건설 무교동 사옥에서 대대적인 준공 파티를 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14년 가까이 지난 1979년 1월, 제2한강교의 폭을 34.1m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의 급격한 교통량 증가와 함께 교량이 노후화됨으로써 교량 상류 쪽으로 노폭 16.1m(4차선)의 새 다리를 잇대어 건설하게 된 것이다. 1982년 2월에 완공된 연장 1,053m의 새 다리 역시 기존 다리와 같은 구조 형식을 채택하였다. 시공은 삼부토건이 맡았으며, 공사비는 149억원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한강종합개발과 더불어 다리 이름도 양화대교(楊花大橋)로 바꾸었다. 이어 1990년대 말에 하류 쪽 구교(舊橋)의 상부구조를 전면 철거한 후 재시공하였으며, 하부구조도 성능을 개선하여 2000년 6월 26일에 재개통(연장 1,048m)하였다. 또한 상류 쪽 다리도 2000년 6월부터 보수ㆍ보강 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4월에 완전 재개통하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연구위원 <한국건설기네스(Ι)길> (이덕수 지음-도서출판 보성각) 발췌ㆍ정리